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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아 쳐 죽을 놈

위기개입이론 STOP

by 서기


내가 속한 의료원의 다른 병원에서 본원으로 30대 여교수가 이동을 해서 왔다. 대학병원은 의료원체제로 운영된다. 의료원산하에 병원들이 있다. 회사로 말하면 그룹의 계열사와 같은 구조다. 의료원은 그룹이고 병원은 계열사인 것이다. 30대 여교수가 본원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객상담실을 찾았다. 이전 병원에서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60대 남성 A 씨가 본원에서도 진료신청을 해와서 너무 무섭다. 진료거부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말을 하면서도 여교수는 소름 끼쳐하며 진저리를 쳤다. 병원에서 진료거부는 매우 신중한 행위다. 잘못하면 의료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 병원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 물었다. 장문의 편지를 여러 통 제시했다. 그 내용은 교수님을 사랑한다. 아파트 한 채 줄 테니 같이 살자. 밤마다 생각이 난다. 그 외에 글로 표현하기 힘든 온갖 성적인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퇴근하는 교수를 따라다니기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교수님이 진료하는 진료과와 관련한 질병이 없음에도, 계속 진료를 신청해서 이상한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정당한 진료거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 씨에게 전화했다. 당신의 이러이러한 행위가 '정당한 진료거부 행위'에 해당해서 본원의 진료를 제한한다고 말했다. 곧바로 이 자식 저자식 쌍욕을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10여분의 긴 통화에서 반복적인 욕설과 고함만 난무했다. 상담중지를 통보하니 찾아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다음날 A 씨가 고객상담실을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쌍욕과 고성이 난무했다. 비상식적인 논리와 행동으로 일관했다. 나는 일관되게 진료거부를 통보했다. 계속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인하여 보안요원을 불렀다. 보안요원의 제지에도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병원에서 쫓겨나면서 A 씨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큰소리로 소리쳤다.


" 이 벼락 맞아 쳐 죽을 놈아~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 벼락 맞아 쳐 죽을 놈아~"


그날, 나는 퇴근하면서 계속 하늘을 쳐다보았다.


며칠 후, 고객상담실로 여러 제보가 들어왔다. 지하철역에서 병원으로 오는 길목에 이상한 내용의 A4사이즈의 전단지가 여러 장 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OO가 서야지, OO병원 망해라! 귀신아 물러가라"였다. 두서가 없는 해괴망측한 내용이었다. 그냥 제거조치했다. 다음날은 같은 내용으로 병원에 부착이 되어 있어서 또 그냥 제거했다. CCTV로 확인하니 A 씨였다. 전화로 이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다음 날은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장소 내에 붙여져 있었다. 콜센터로 전화해서 지속적인 욕설과 함께 업무방해 행위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의 설득과 제지행위가 통하지 않아 법적 고소처리를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고소했다. 원내 변호사가 고소장을 작성해서 접수했다. 고소 이후 이러한 행위가 잠잠해졌다. 역시 고소가 효과가 있었나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난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A 씨를 아느냐고. 당연히 안다고 했다. A 씨가 성추행, 성폭력행위로 구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재판할 때 병원에서 고소한 건도 같이 처리하니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고 했다.

OO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A 씨가 손이 묶인 채 수감복을 입고 들어왔다. 내가 답변하는 동안, 나를 매섭게 쳐다보면서 "나가서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라고 소리쳤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이런 자리에 증인으로 나오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어디선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 OOO 씨, 조용히 하세요. 그러면 죄가 더 무거워질 거예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성판사였다. A 씨는 주눅 들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여성판사님이 우러러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병원으로 돌아와서 직원들에게 커피를 돌렸다. 증인으로 참석하니 교통비로 소정의 금액을 주었기 때문이다.

몇 달이 지난 후 경찰로부터 A 씨가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산을 해보니, A 씨가 출소하는 날이 나의 정년퇴직일 한참 후였다. "휴~" 가만 안 둔다고 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교수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진료 중이시다. 곧 명의가 되실 것 같다. 조만간 교수님이 보낸 커피를 직원들과 함께 마시면서 흐뭇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 이 아래는 안 읽으셔도 됩니다.


위기개입이론 기반 STOP 기법


위기개입이론(Crisis Intervention Theory)

개인이 일상적 대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개입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기능을 회복시키는 이론이다. 핵심 원리는 신속한 평가, 즉시 개입, 단계적 대응, 안전 우선이다.


STOP 기법 (위기개입이론 적용)


S - Safety (안전 평가)

즉시 안전 위험도 평가 및 피해자 보호 조치

2차 피해 방지 및 긴급 대응 체계 구축

T - Threat Assessment (위협 평가)

행동 패턴 분석 및 위협 수준 분류

지속성 여부 판단 및 법적 기준 검토

O - Options (선택지 검토)

경고 → 진료제한 → 보안조치 → 법적대응 단계별 옵션

피해자 지원 방안 포함

P - Plan (실행 계획)

단계별 실행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

문서화를 통한 법적 근거 마련, 사후 관리


※ 고객상담실에서는 환자 민원상담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의 신변위협 등 보호조치와 관련된 상담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명확한 이론적 기법은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위기개입이론에 기반하여 STOP 기법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위기개입이론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분은 정원철 등 공저 『위기상담』(양서원, 2022)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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