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중요성
"당신들 병원에서 전화기로 전파를 쏘아서 내가 유방암이 걸렸어. 그러니 당장 보상하라고~!"
고객상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큰 소리로 항의하는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환자의 절규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전화기로 전파를 쏴서 유방암에 걸렸다고?' 분노와 절망만 뒤섞여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인과관계도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적어도 그 분에게는 단순한 억지 주장이 아닌, 분명한 현실인 듯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내용을 차근차근 들어보니 점점 내 생각도 분명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맞았다. 문제는 환자가 그 원인을 병원의 전파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로 인해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의 주장은 정신과적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볼까요?"
만남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화는 더 쉽지 않았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으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확신하고 있었다. 나의 생각도 더 확고해졌다. 보호자와의 면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보호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어머니의 이런 증상 때문에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요. 저희 말을 듣지 않으세요.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들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과 걱정이 묻어났다. 걱정은 되지만 마땅한 방법을 몰라하고 있고, 완강한 어머니의 태도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환자를 상담실에서는 진상환자로 취급한다. 환자의 호소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데, 빈도와 강도는 센 이유로 상담자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진상환자로만 여겨 외면했다면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의료사회복지사로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고객상담실로 이동하여 상담 업무를 하고 있는 지금, 그 경험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진상환자가 아니라 정신적 증상이 있는 환자로 보게 된 것이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설명했다. 유방암 치료도 중요하지만, 먼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우선이다. 왜냐하면, 유방암 치료를 하려면, 환자가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인식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신적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하다.
다행히, 아들은 나의 제안에 동의했다. 함께 본원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을 알아봤지만 여성 병실이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협력병원을 수소문하여 입원할 수 있었다.
몇 주가 지나 환자의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자, 본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으로 전원하여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환자는 치료에 잘 순응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통해 본인의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술과 방사선치료가 남아있지만 항암치료를 잘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치료들도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 만약 그를 단순히 '고약한 진상환자'로만 취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담자는 고객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잘 들으면 고객을 잘 알 수 있고, 잘 알게되면 적절한 방법을 안내해 줄 수 있다. 물론, 적절한 방법을 안내해 주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잘 듣는 것은 많은 공부와 조사보다는, 일을 대하는 능동적인 자세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만약 내가 "전파로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에만 집중했다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정신적 증상을 가진 진상환자로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경청을 통해,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가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진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살다보면 때때로 진상고객처럼 보이는 사람, 거친 말과 말도 안되는 말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이런 사람들 일수록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일 수 있다. 조금만 더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보자.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는 생명 같은 귀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작은 관심과 반응으로 한 인생의 변화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귀하고 행복한 일이다.
경청이란?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과 진짜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상담기법입니다.
경청의 핵심 요소
전체적 듣기 :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감정, 비언어적 표현까지 종합적으로 파악
판단 보류 : 즉각적인 판단이나 평가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확인하기 : "~라는 말씀이시군요" 등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했음을 표현
공감적 반응 : "~때문에 힘드셨겠어요" 등의 표현으로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
실무 적용 팁
이상하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말도 그 사람에게는 진실일 수 있음을 인정
"왜 그런 생각을 하실까?" 하는 호기심으로 접근
말 속에 숨겨진 진짜 욕구나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
* 경청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칼 로저스의 『사람중심 상담』(학지사, 2007)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