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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20 법칙

직장인의 생존 전략

by 서기

의료사회복지사라는 전문직에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은 마치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다가왔습니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전문 업무에서 민원 상담업무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습니다.

새로 배치된 부서는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조용한 듯하다가도 갑자기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 그리고 가끔씩 마주하는 진상 고객들. 처음 민원 업무를 맡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의료사회복지라는 전문 분야에서는 나름 베테랑이었지만, 민원 상담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수천명의 의료인과 직원들, 하루 만 명이 넘는 외래, 입원 환자들이 진료받는 거대한 병원에서 벌어지는 민원의 방대함과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수술과 진료결과에 대한 불만, 의사의 진료 태도에 대한 불만, 간호사의 응대 방식에 대한 항의, 진료비 과다 청구 의혹, 진료지연과 예약시스템의 오류에 대한 분노, 주차장 부족 문제, 병실 환경에 대한 불만, 식사 서비스 품질 문제, 심지어 죽음과 장애 발생에 대한 불만까지. 하루에도 수십 가지 서로 다른 상황의 민원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어떤 민원은 의료진의 소통 문제였고, 어떤 것은 행정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었으며, 또 어떤 것은 환자나 보호자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문제에 대한 각각의 민원마다 관련된 부서가 달랐고, 해결 방법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화가 난 민원인의 거센 항의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였고, 복잡하게 얽힌 의료진-환자-행정부서 간의 관계를 파악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라면 견딜 만했겠지만,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들이 늘어갔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퇴근 후에도 그날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잠들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감정적으로 격해진 민원인을 상대할 때였습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는 상황, 때로는 인격적인 모독까지 감수해야 하는 순간들. 몸과 마음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래서는 안 돼. 나는 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이 20-20-20 법칙이었습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20분씩 생리적 건강, 육체적 건강, 심리정서적 건강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20분간 제대로 된 식사로 몸에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식사를 대충 때우거나 아예 거르는 날들이 많았는데, 의도적으로 꼭 챙겨 먹었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과 에너지를 공급받는 시간이었죠.

다음 20분은 걷기로 굳어진 몸과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긴장된 상태로 있다 보니 어깨와 목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혈액순환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깊게 숨쉬는 것만으로도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걷기는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개선하는 자연스러운 치료과정이었습니다.

마지막 20분은 근처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특별했습니다. 책을 읽으려고 갔지만, 정작 책을 펼치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저 그 고요한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고요함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은은한 형광등 불빛, 은은하게 퍼져있는 책 냄새.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치유 공간이었습니다. 소음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 뇌가 스스로 정리하고 회복하는 안전한 피난처 였습니다. 그 피난처는 안락하고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버티기 위한 자구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천해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후 업무를 시작할 때면, 오전의 지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활력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매일 60분의 시간의 기다려졌습니다. 20-20-20 법칙이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활력을 찾아주었습니다.

혹시 지금 직장에서, 일상에서 버티기 힘든 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20-20-20 법칙은 단순히 점심시간 활용법이 아닙니다. 우리 몸과 마음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주는 생존 전략입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 마음이 갈구하는 것, 정신이 원하는 것을 골고루 채워줍니다. 이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세요. 꼭 도서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조용한 카페 한구석, 공원의 벤치, 사무실의 빈 회의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음과 자극에서 벗어나 뇌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멍때리기도 좋습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를 회복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예방의학 박사인 이시카와 요시키는 『지치지 않는 뇌 휴식법』에서 지치지 않는 뇌를 만들기 위한 일일 생활법은 업무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음챙김 명상 전문가인 존 카밧진은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스스로를 치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의 말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뇌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입니다.

어려운 일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거창한 곳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돌보는 작은 루틴에서 생겨납니다. 당신도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당신만의 20-20-20 법칙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하루하루를, 조금 더 견딜 만하게,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 작은 변화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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