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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길로 이어진다

by 서기

25년간 의료사회복지사 외길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직장에서 이제부터 고객상담실에서 민원상담을 하라고 한다. 지금과는 다른 길의 인생을 살아라고 한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라고 한다. 25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 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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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일반적으로 이 시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인생의 숙명과 선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나는 반항했었습니다. 두 길도 한 길을 계속 가다보면 다른 길과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풍신수길의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풍신수길이 어느날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손금이 이어져야 하는데 끊어져 있어서 출세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풍신수길은 칼로 손바닥을 그어서 그 손금이 이어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칼로 손바닥을 긋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인사발령은 무서웠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사표를 쓰든가 발령대로 가든가. 저는 발령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의료사회복지를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회복지팀을 떠납니다. 다른 팀이지만, 병원내에서 일합니다. 따라서, 어느 곳에 가든지 환자들의 복지를 생각하면서 일할 것입니다. 다른 현장에서 의료사회복지를 실천할 것입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니까요. 후배들은 심각한 듯 하기도, 감동받은 듯 하기도 그리고 뭔 말하는가 하는 듯 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퇴근길 버스안에서 산에 걸린 달을 보았습니다. 뜨거운 것이 얼굴에 흘려내렸습니다. 강한 척했지만 연약한 인간이기도 했었습니다.


고객상담실에서 환자들의 민원을 상담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고 보람된 일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다 보니 5년이 지났습니다. 25년 의료사회복지의 길이 5년 고객상담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상담의 내용은 달랐지만 상담의 본질은 같았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이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경험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의료사회복지의 길이 끝났을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이 있었습니다. 가다 보니 그 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길은 이어집니다. 물론 가끔 길을 탈선하기도 하고 엉뚱한 길로 가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정호승은 "봄길" 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길이 되어 길과 길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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