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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진료비영수증을 찢어서 던진 여인의 슬픈 최후

동정과 다른 공감

by 서기

그녀가 3년 만에 고객상담실을 방문했다. 그 당시 정형외과에서 MRI를 찍고 별 문제가 없다고 진단받았다. 이후, MRI검사가 부적절했다고 환불을 요구했다. 찍고 나서 별 문제가 없으니 환불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환불이 불가함을 설명하고 난 후 마무리된 줄 알았다. 방문 전에 가끔 전화상담을 했었다. 환불을 요구했고 이런 경우는 환불이 불가함을 설명하면 대화가 어렵지만 이해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번의 전화상담이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 환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전화로 상담할 때는 말을 잘하는데, 대면상담을 할 때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대면상담에서 이렇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필담도 하면서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다.


이 날도 정신과 진료 후 찾아와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웅얼거리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여러 차례 전화상담을 한 이후라 무슨 말인지 나는 알아들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환불이 어려움을 설명했다.


"내 진료료비비 도려려 내내란 마리리야~~"


스스로 화가 난 환자는 당일 받은 진료비 영수증을 갈가리 찢더니 내 얼굴을 향해서 확 던졌다. 잘게 찢긴 영수증이 일부는 내 얼굴에 부딪히고 나서, 일부는 그냥 허공에 흩날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장면이 느리게 움직였다. 살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부딪히고 난 순간 모멸감이 들었지만 참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정신과 약 조절이 잘 안 됐었나 보다라고. 이런 경우는 사실 폭행에 해당한다. 다른 환자였다면 이걸 핑계 삼아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이 환자는 그렇지 않다. 가족이 없었다. 아니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처음 상담 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여러 차례의 연락 끝에 겨우 아들과 통화연결이 됐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증상과 증상으로 인한 고집스러운 행동으로 지쳤다고 한다. 본인 말은 듣지 않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락을 끊고 산다고 했다. 체념한 듯이 본인도 어머니에게 지쳤으니 이제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병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한다. 더 자세한 가족상황은 모르지만 그렇게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의 상담이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일 수도 있었다.

내 아들들이 생각났다. 오늘 퇴근해서 집에 가면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면서.


"진정하시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평소처럼 집에 가서 전화하세요~"


나는 자주 전화통화했던 것처럼 집에 가서 전화통화 하길 권했다. 환자는 잠시 후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몇 차례 전화상담을 진행했다. 전화상담은 별 내용이 없다. 똑같은 내용의 반복에 일상을 묻고 치료 잘 받기 위해 약 잘 드시라는 말로 끝난다. 어쩌면 환자에게는 상담전화가 외로운 일상에서의 외출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면 이런 상담전화는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후 약 6개월간 연락이 없었고 그녀도, 상담전화도 점점 잊혀 갔다.


"OO병원이죠? OO경찰서 OOO형사입니다. OOO 씨 아세요?"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다. 그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놀랐다. 그런데 형사가 그 환자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다. 아는 대로 대답했다.


"그런데 아들에 대해서는 왜 물어요?"

"아들이 엄마를 죽였어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형사에게 몇 마디 물어본 것과 아들과의 경험을 통해 유추해 봤다. 환자의 증상이 심해져서 아들을 더 괴롭혔을 테고 이를 참다못한 아들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환자도 아들도 참 슬픈 인생이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왜 그렇게까지.....

환자들은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환자의 가족들도 많은 사회적 고통을 받는다. 질병은 오로지 그 환자와 가족이 감당해 낼 고통이다. 더 많은 사회적 인프라와 지지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을 외롭지 않게 할 것이다.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함께 맞는 비"를 쳐다본다. 신영복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함께 맞는 비"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무겁고 공허하게 내 가슴에 와닿았다.


故 환자분의 명복을 빕니다.

아들분도 수감생활 중 참회하면서 잘 생활하시길 빕니다.





이 아래는 안 읽으셔도 됩니다.


공감(Empathy)

공감이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단,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유지해야 합니다.


공감의 3가지 구성요소

1. 인지적 공감 (Cognitive Empathy)

- 내담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 예 : "당신이 왜 이렇게 느끼는지 알겠어"

2. 정서적 공감 (Affective Empathy)

- 내담자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

- 예 : "당신의 아픔이 내게도 전해져"

3. 행동적 공감 (Behavioral Empathy)

- 공감적 이해를 적절히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

- 예 :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을 내가 보여줄게"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의 차이

공감은 내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동정은 상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공감은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동정은 상담자가 위로하고 싶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다.

공감의 표현은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셨겠어요."이지만 동정의 표현은 "안 됐네요. 불쌍해요"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정보다는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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