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 고객응대근로자
병원 자동문이 오작동되어 본인의 명품 선글라스가 파손되어 보상을 요구하는 민원인이 방문했다.
"자동문이 쌩 닫혀서 내 명품 선글라스가 부러졌어요. 이게 얼마 짜린 줄 알아요? 변상해 줘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잘 차려입은 여성이었다. 민원을 접수하고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CCTV 확인과 시설팀에 자동문 오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시설팀의 답변은 오작동한 사례는 없고 자동문이 닫히려고 하는 순간에 뛰어들듯이 진입하여 부딪히는 사고는 가끔 있다고 했다. CCTV를 확인하니 멀어서 얼굴이 선명하게 확인은 되지 않으나 시설팀의 설명과 같은 상황은 있었다. 다른 쪽 CCTV를 확인하여 복장을 통해 동일인임이 확인되어 얼굴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자동문 오작동은 아니었고, 고객님께서 문이 닫히는 순간 진입하시면서 발생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민원인에게 CCTV를 보여주면서 자동문 오작동이 아님을 설명했다. 민원인은 CCTV속의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고 했다. 주변 CCTV를 보여주면서 이동동선과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본인이 맞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옷을 입는 사람이 한 두 명이냐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동동선에서 안내직원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있어서 안내직원과 대질신문까지 했다. 안내직원은 이 분이 맞다고 했으나 민원인은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고 반박했다.
얼굴이 확실하게 클로즈업된 CCTV 화면을 제시하고서야 본인임을 시인했다. 이제는 자동문이 본인이 뛰어가는데 닫히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본인이 닫히는 자동문 속으로 뛰어들었더라도 자동문이 즉시 열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무리한 주장이었다. 내가 잘 모르는 브랜드의 선글라스인데 내 돈으로 그냥 보상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얼마냐고 물으니 몇 백만 원 한다고 해서 그런 마음을 접었다. 고객님의 부주의로 인한 파손이었음을 다시 한번 설명했으나 큰소리를 치면서 변호사 자문해서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그 이후로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민원상담하기 가장 어려운 상대인 특정유형의 고객이 있다. 아마도 학력도 높고 지식도 많으며 본인의 피해나 손해에 대해 예민한 편이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했다.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고객상담실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상담했던 민원인도 이런 유형에 해당했다. 전화상담으로만 진행되었는데 한 번 상담하면 평균 한 시간이었다. 그녀와 상담 중일 때 동료직원들은 일상적인 듯 점심식사하러 줄지어 나갔다. 나는 통화하면서 줄지어 나가는 동료직원들과 눈이 계속 마주쳤는데, 내 눈이 슬퍼 보였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 들으니 나이 먹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나이에 거기서 그런 일 하면서 살잖아. 나잇값 해야지~"
며칠 밤잠을 설쳤다. 지금 그녀와 다시 상담을 한다면 밤잠을 설치지 않을 자신은 있다. 그때 나는 어떤 어려운 고객을 만나더라도 적어도 인격모독은 하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민원상담이란 것도 사람과 사람이 상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상호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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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응대 등 업무수행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업무상, 조직상 요구되는 노동형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제2조 제1호(정의)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로 산업안전보건법 41조(일명 : 감정노동자보호법)에서는 '고객응대근로자'로 표현한다. 이 법에서 사업주는 고객응대근로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예방 및 사후조치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 전체 노동자의 31.7%가 감정노동자에 해당한다.
-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4년 고용동향브리프 3호’
* 감정노동자의 71.1% 1) 또는 77,9% 2) 가 폭언, 폭행,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한다.
1) 2021년, 부산시, ‘감정노동자 실태조사’
2) 2024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종으로는 승무원, 콜센터 상담원, 텔레마케터, 고객센터 직원,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