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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직원 선정이 자녀혼사에 방해가 돼요

한국의 체면 문화, 대리 체면(vicarious face)

by 서기

대학병원은 매월 칭찬직원을 선정해 직원식당 옆에 공지한다. 이름과 얼굴이 함께 게시되고, 교직원뿐 아니라 청소·보안 등 협력업체 직원도 포함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


청소를 담당했던 미화여사님의 여동생이 전화로 민원을 제기했다.


"언니가 병원 칭찬직원에 떴어요. 곧 조카 혼사인데... 이거 좀 내려주세요."

"왜요? 칭찬받으셨는데..."

"사돈댁에서 보면 어떡해요. 혼주가 청소한다고 수군거릴 텐데..."


공지의 얼굴과 이름을 누구라도 보게 되면 언니가 청소하는 사람인 걸 알게 되고, 그것이 사돈댁에라도 전해지면 자녀혼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했는데 청소일이 천한 직업이어서 사돈댁에서 알게 되면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친여동생이 이야기한 것이다. 당사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고 청소업체에 연락했다. 소장은 난처한 듯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미화여사님의 짧게 끊어 말하는 목소리에서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괜찮다는데 여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유 없음으로 처리하고 여동생에게 다시 전화했다.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언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왜 상관이 없어요. 상관이 없기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뭘 해결한 건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여동생은 정말 언니를 위한 걸까? 나는 이 여동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만약 내 가족이라면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언제쯤 우리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음 날, 직원식당을 지나다 칭찬직원 게시판을 봤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그분의 사진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이 아래는 안 읽으셔도 됩니다.



한국의 체면 문화

- 한국 사회에서 체면은 개인의 사회적 가치와 위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타인의 평가를 중시하는 관계 중심적 문화에서, 체면은 직업, 학력, 경제력 등으로 측정되며 혼사와 같은 중요한 순간에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 이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작 당사자인 언니는 괜찮다고 했는데 여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여동생은 언니의 직업이 사돈댁에 알려지면 자녀 혼사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했다.


대리 체면 (vicarious face)

- 나는 이를 '대리 체면'이라고 하고 싶다.

- 심리학에는 '대리 만족(vicarious satisfaction)'이나 '대리 수치심(vicarious shame)'이란 개념이 있다. '대리 수치심'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본인이 수치심을 느끼는 현상이다. 나는 이 개념을 빌려와, 이 사례를 '대리 체면'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 대리 체면은 '타인(주로 가족)의 상황이나 행동이 자신의 체면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거나, 타인의 체면을 자신이 대신 의식하고 관리하려는 심리 현상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 여동생의 걱정은 단순히 언니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혼사 자리에 참석할 자신의 체면을 의식한 것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심리적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 집안"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한 사람의 직업이나 처지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의 체면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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