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원 실수가 맞아서 다행입니다

현실치료, Want 탐색

by 서기

80대 초반 할머니가 고객상담실을 찾아오셨다. 두 달 전 콜센터에 전화해서 '10월 1일 화요일'로 예약을 변경해 달라고 했는데, 오늘(화요일) 병원에 와보니 예약이 10월 3일 목요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료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화내시면서 따지셨다. 외래에 확인하니 예약은 오늘이 아니라 목요일이 맞다고 했다. 콜센터에 확인하니 두 달 전 일이라 찾아보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어르신들은 보통 날짜를 헷갈려하신다고 한다. 나도 순간 콜센터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르신들이 헷갈리셨겠거니 하고...


"어르신, 어차피 오늘은 예약이 안되어있어 진료가 안되니 목요일 다시 오세요. 그동안 콜센터에 확인은 해 놓을게요!"

"내가 분명히 화요일이라고 했어! 목요일이라고 한 게 아닌 게 맞단 말이야!"

"어르신,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예약이 목요일로 되어 있어서 오늘은 진료가 어렵습니다. 콜센터 기록을 확인해서 목요일 오실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르신은 억울하신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콜센터에서 녹음된 파일을 찾아서 방문했다.


"어쩌죠? 확인해 보니 어르신이 화요일이라고 한 게 맞아요. 저희 실수예요."

"어쩔 수 없죠! 어르신에게 바른대로 이야기하고 사과해야죠!"


어르신은 집에 돌아가 따님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셨다. 걱정이 된 따님은 목요일,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다시 찾아오셨다.


"어르신, 콜센터에 확인해 봤는데 어르신 말이 맞아요. 콜센터 직원이 실수한 거예요. 죄송해요! 어르신!"

어르신은 "그래, 내가 맞았잖아!" 하시며 안도의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데 따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정말요? 콜센터 직원의 실수가 맞아요? 아유~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함께 오신 따님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보통 이런 경우의 반응은 냉정맞고 쌀쌀하게 질책하거나 병원직원의 실수로 하루 더 방문하게 된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저희 어머니가 치매가 오신 줄 알았는데 치매가 아니신 것 같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따님의 목소리에는 안도가 가득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 억울함을 토로했을 때, 따님은 병원의 실수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억력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 혹시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셨던 모양이다.


병원 측의 과실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직원의 실수보다 어머니의 기억이 정상임을 확인한 것이 따님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같은 사실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민원을 대할 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아래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실치료(Reality Therapy)

1965년 William Glasser에 의해 창시된 이론으로 과거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두고, 내담자가 자신의 욕구(Want)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효과적인 행동을 선택하도록 돕는 단기 상담 접근


Want 탐색

현실치료의 핵심기법 중 하나로 내담자의 욕구와 Want를 명확히 탐색하여 아는 작업임

Want 탐색이 중요한 이유는

Want가 명확해야 치료 방향의 설정이 가능 (방향성 제공)

내담자의 Want가 곧 변화의 에너지 (동기부여)

Want 파악을 통해 표면 문제 뒤의 진짜 문제를 알 수 있음 (진짜 문제 발견)

Want는 상담자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가 발견하는 것 (내담자 중심)

치료 후 Want가 충족되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가능 (측정 가능)


keyword
이전 16화내가 병원장이랑 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