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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지지 마세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비심판적 태도

by 서기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이란 질환이 있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은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매우 드물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을 말한다. 통증은 손상의 정도에서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발생하며 해당 손상이 해결되거나 사라졌음에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주로 팔과 다리에 잘 발생하지만 드물게는 다른 신체 부위에도 발생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CRPS 환자들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든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여러 가지 치료가 있지만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세한 자극에 의해서도 해당부위의 심각한 통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조차 고통스럽다.


어떤 환자는 이러한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를 만지지 마세요. 조그마한 자극에도 너무 아파요"라는 문구를 휠체어에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한, 쉽게 내려지는 판단에 대한,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절박한 호소였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몇몇 환자들은 과도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CRPS 환자 한 명이 고객상담실로 전화를 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주면 어떡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다른 약으로 바꿔줘~"


의료급여수급자인 장애인 이셨는데 본원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마약성진통제를 주었으니 유효기간이 넉넉한 마약성진통제로 교환해 달라는 것이었다. 의약분업에 의하여 병원에서 처방된 약은 외부약국에서 구입을 해야 하지만 중증장애인, 응급환자등은 의약분업 예외환자로 병원약국에서 약을 받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약제부에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고 했다.


"원내 처방약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요. 특히나, 마약성 진통제는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요. 처방받아간 약을 확인하면 본원에서 언제 받아간 약인지 알 수 있어요."

"요즘, 일부 환자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불법 유통하고 있다고 해요.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약제부의 답변이었다. 환자에게 전화해서 본원에서 잘못 나갔을 수는 없지만, 처방받은 약을 병원으로 가져와서 확인이 되면 교환해 주겠다고 했다. 환자는 그냥 새로 주면 될 것이지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후에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또 다른 환자 한 명은 너무 자주 응급실을 방문해서 약을 수령해 갔다. 집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굳이 본원 응급실로 와서 약을 수령해 갔다. 약을 과도하게 수령해 가는 문제 때문에 응급실 약처방은 어려움을 설명하자 본인의 차량으로 응급실 벽으로 돌진하여 사고를 냈다. 병원에서 접근금지 처분을 내리자 병원중간 옥상에서 자살소동까지 벌였다. 119가 출동해서 1층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았고 경찰이 출동하고도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해결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극심한 고통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문제, 가족문제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한 비극적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주변의 작은 관심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마약성진통제 처방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처방기준을 변경한 때가 있었다. 이때는 환자들의 반발에 대비하여 고객상담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그만큼 CRPS 환자에게 마약성진통제는 예민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본인들의 통증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통증이 심하니 일반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환자들은 더 고통을 받기도 한다. 아파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통일 것이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병원 고객상담실에서 일하며 만난 CRPS 환자들의 '나를 만지지 마세요'는 물리적 접촉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겉모습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보이지 않는 고통도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다. 그 문구를 붙이고 다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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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심판적 태도

- 상대방의 행동이나 생각을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려는 상담의 일반적인 원칙 중 하나

- 비심판적 태도는 내담자의 방어를 낮추고 상담자와 내담자의 신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며 내담자의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비심판적 태도는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경계와 규칙은 필요하지만, 그 행동을 한 사람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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