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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제르 Nov 01. 2023

단지와 끈

상담사가 상담받는 이야기

"글쎄요. 제가 선생님께 무슨 생각으로 연락을 드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남편과 사이도 좋고 아이들은 잘 크고 있고 저에게 다른 특별한 일은 없는데요. 제가 왜 왔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자기분석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러기엔 제 마음이 어딘가 편안하지 않은 것도 같아요." 

 

  지난주 시작한 상담에서 선생님의 "어떤 어려움 때문에 오셨어요?" 하는 첫 마디에 주절 주절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제가 어찌어찌 제 방식대로 묶고 매듭까지 지어서 여기에 가져왔는데요. 이게 좀 안 예쁜 것 같아서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딘가 어색하게 묶인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또 자세히 보면 줄이 엉켰는데 엉킨 줄도 모른 채 대강 묶어 버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앞에서 풀었다가 다시 차근차근 예쁘게 묶고 싶어요. 그래서 왔나 봐요. 


  어려서부터 내 비전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만의 강점을 발견해서 별이 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직업적인 측면에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보다 하고자 하는 일을 분명하게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분명 나보다 덜 공부한 것 같은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스타,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자신이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을 드러내고 그렇게 쌓인 피드가 그들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이었다. 사실 누가 얼마나 더 배우고 더 노력했는지, 혹은 실력 있는 사람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그들 중에서 나는 나와 내 동료들만큼 깊이 있게 고민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쉽게 올려서는 안되고 가볍게 말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누군가는 한 톨이라도 놓칠 새라 자신의 이력으로 담아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억울했다. 


  하루라도 뒤처질까 두려웠고 내 곁에 기회가 떠오른 것도 못 본 채 지나쳐 버릴까 겁이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재울 때마다 시작했던 공부였는데, 점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시간에 이 책을 한 권 더 읽었을 텐데...', '풀타임 워킹맘들은 좋겠다(망언 양해 바람). 어쩔 수 없이 정해진 8시간 동안 일해야만 해서.' 등등... 이런 생각의 끝에는 '복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복직해서 풀타임 직장에 다니면 애매했던 나의 소속이 정리되고 아이들의 상황이 어떻든 어쩔 수 없이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많은 워킹맘의 현실은 '남편과 반반'이 아니지 않은가. 남편만큼 벌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그동안 감당해온 것에서 절반을 떼어 남편의 어깨에 얹어 주기에는 그도 이미 충분히 바쁜 사람이었다. 


억울했다. 


  소속감은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던 지난 7년이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집안을 돌보다, 공부하는 프리랜서의 역할이 생긴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그러니까 이제 1년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 언제 아플지 모르니 주중에는 출근할 일을 만들지는 않지만 공부를 하거나, 콘텐츠를 만들거나, 주말 상담을 준비하거나 하는 식이라 머릿속에 '일 영역'이 꽤 높은 비중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 둘을 기관에 보내면서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견학 가기로 한 날 간식을 못 챙겨서 부랴부랴 사다 넣어준 일, 어린이집 준비물 챙겨주는 것을 자꾸 잊었던 일... 누군가 보기에 분명 나는 가정주부일 텐데, 엄마로서의 일을 이렇게나 잘 못해내다니. '저 집 엄마는 집에서 애들 안 챙기고 뭐 하는 거야?'라고 수군댈 것만 같았다. 나의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남편조차도 가끔 아이를 잘 못 챙기는 나의 미숙함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억울했다. 


  '나'라는 단지를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여러 개의 끈으로 매듭을 지어 왔는데, 어디에서는 엉켰고 어디에서는 허술하게 묶인 모양이었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자아와 정체성을 조화롭게 합쳐지는 것을 '통합'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지금 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불편하게 만든 기저의 감정은 다름아닌 '억울함'이었다. 이는 선생님 앞에서 주절주절 풀어 놓았던 이야기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눈에 띄게 힘든 점 없이 묶어 왔지만 아직 어느 영역에서도 베테랑이라고 할 수 없는 역할들이었기 때문인 걸까. 


  앞으로는 내 안의 불안함, 엄격함, 그리고 억울함에 대해 풀어 보고자 한다. 상담이 주는 힘과 글쓰기가 주는 통찰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 cameramandan83,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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