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나동 Jun 27. 2023

'그깟 쟁반이 뭐라고' 오픈런까지

한국에서도 안 해본 오픈런을 스웨덴에서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지난 3월 초 이케아와 마리메꼬 콜라보 제품이 나왔다.

바스투아(Bastua) 컬렉션이라고 이름 붙은 라인이었다.

이케아에서 친절하게 메일을 보내줘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 스포츠휴가를 힘들게 보내고 돌아오니 출시 첫날 모든 상품이 품절된 뒤였다.

사고 싶은 게 있었는데 구경도 못했다.

한국에선 스웨덴보다 5일 후 판매를 시작했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개장 시간 전부터 줄이 길었다고 했다. 인기 제품은 몇 시간 만에 다 팔렸다고.

이케아에 북유럽 감성 마리메꼬가 묻은 제품이니 말 다했지 뭐.

비록 월셋집이지만 조명 하나 사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만약을 대비해 입고 알림 서비스를 신청해 뒀다.

며칠 뒤 둘째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재고 알림이 울렸다.

바로 스톡홀름 이케아 갤러리아점으로 직행해 사고 싶었던 조명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나무 손잡이가 달린 원형 한지 랜턴이었다.

전원을 켠 Bastua 랜턴

반가운 마음에 2개를 덥석 집어 들었다. 경쟁자도 없었다. 무혈입성이었다.

가격은 개당 299크로나, 한국돈으로 대략 3만6천원 정도였다.

동일 제품의 한국 이케아 가격을 봤는데 2만4천900원이었다.

2개를 샀으니 무려 2만원 이상 더 주고 산 셈이었다.

이케아 보유국인 스웨덴에서 가격이 저렴하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30% 이상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었다.

국내에서 옵션 장사 해 먹고 정작 미국에선 보증기간 연장, 풀옵션 된 차를 저렴하게 팔았던 모 국내 자동차회사 소비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인데.

같은 제품인데 한국보다 비싼 스웨덴 이케아 콜라보 제품(렌턴과 테이블)

집에서 켜보니 생각보다 너무 불빛이 약했다. 야간에 분위기 조명 정도로 쓸만하겠다 싶었다.

아내가 랜턴을 보더니 '별로네'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곤 이번 콜라보 제품 중 쟁반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마음에 든다는 건 사라는 말이었다.

쟁반 입고 알림 서비스를 신청했다. '내가 사주마' 큰소리도 쳤다. 랜턴도 샀는데 쟁반 못 사겠는가 싶었다.

며칠 뒤 입고됐다는 알람이 울렸다. 이케아 개장시간 전이었다.

만사를 제쳐두고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케아로 갔다.

개장 30분 전이었는데 한산했다. 천천히 올 걸 후회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오니 어라 제법 사람이 많았다. 입구에 대거 사람이 몰려 있었다.

이케아 개장 시간이 임박하자 입구에 몰린 손님들

이 사람들 이케아-마리메꼬 쟁반 사러 왔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전 10시 정각이 되기 전까지는.


직원이 입구에 묶어놓은 줄을 풀자마자 입구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달렸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난 아직 입구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그깟 쟁반 하나 사려고 이 난리를 벌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손님들이 물밀듯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입구 앞열을 차지한 사람 대부분이 50~60대 여성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점잖아 보이던 그 아주머니들이 선두에서 치고 나가자 당황한 뒷사람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스톡홀름 갤러리아 이케아점은 입구로 들어가서 좌회전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오른쪽으로 유턴해서 직진하면 이케아-마리메꼬 콜라보 제품 매대가 있었다. 통로 폭이 좁아 추월할 수 없는 구조다.

예기치 않은 오픈런에 입은 바짝 타들어가고 선봉에서 달리던 아주머니들이 먼저 도착해 쟁반을 들고 만면에 미소 짓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그래도 '스웨덴'인데 줄 서서 차례대로 쟁반을 집어갈 줄 알았다.

줄이고 뭐고 없었다.

내가 본 스웨덴인들은 버스 정류소에서 아무렇게나 서 있는 거 같아도 막상 버스가 오면 기가 막히게 온 순서대로 줄 서서 타던 사람들이었는데.

마리메꼬 콜라보 쟁반 앞에 스웨덴 선진 시민은 없었다.

오픈런을 야기한 문제의 마리메꼬, 이케아 컬래버레이션 쟁반

마구 손을 뻗어 집히는 대로 쟁반을 가져갔다. 이날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확인한 쟁반 입고 수량은 100개 이상이었다.

여유 있는 수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아내한테 '사주겠다'고 큰 소리 뻥뻥 쳤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노랬다.

그때 60은 넘어 보이는 한 여성분이 쟁반 4개를 내밀었다.

10개를 집었는데 자기한테 너무 많다고 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고마웠지만 집히는 대로 마구 가져가니 금세 매대가 1분도 안돼 비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상처뿐인 영광과 함께 북유럽 감성 이케아-마리메꼬 콜라보 쟁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쟁반 하나를 집주인 할머니에게 드리니 아주 좋아하셨다. '나도 이거 안다고' 하면서.

콜라보 쟁반은 부담 없이 선물로 주기 딱 좋았다. 오픈런 무용담을 살짝 곁들여서 말이었다.

오픈런 실패 후 한 여성분 도움으로 득템 한 쟁반 영수증

스웨덴에도 분명 오픈런이 있었다.

하지만 명품도 아니고 하나에 만원 남짓하는 쟁반 100여개가 1분 컷이라니 웃펐다.

알고 보니 스웨덴 중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이웃나라 핀란드의 마리메꼬라고 했다.

그걸 들으니 일면 수긍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마리메꼬(marimekko)와 협업한 이케아는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긴 했다.

원색의 입자가 큰 화려한 꽃무늬 문양은 잘 소화하기 어려울 거 같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거리에서 마리메꼬 의상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눈길이 갔다.

5년 전 북유럽 여행 때 핀란드에서 가서 삼남매 끌고 마리메꼬 아웃렛을 찾아갔던 기억이 아련하다.

빨강 꽃무늬 원단도 샀는데 액자로 만들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돌아오면서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아내가 산 마리메꼬 백팩은 5년 넘은 지금까지 잘 메고 다닌다.

마리메꼬 이미지를 차용한 핀에어 항공기와 냅킨

개인적으로 마리메꼬 상징 문양으로 도색한 핀에어 항공기가 깔끔하면서 예뻤다.

항공기 도장뿐 아니라 냅킨, 담요, 베개, 종이컵 등에도 마리메꼬 문양을 넣었다.

핀에어는 마리메꼬를 통해 고급 이미지를 브랜딩 하고, 마리메꼬는 핀에어를 통해 지명도를 높이고.

이런 게 핀란드 대표 브랜드끼리 윈윈 하는 진정한 콜래버레이션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식값이 비싼 스웨덴에서 부담 없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이케아는 한국 있을 때보다 더 자주 갔다.

집안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다이소 같은 곳이었다.

이케아는 2022년 9월 저렴한 대표 음식인 핫도그 가격을 5크로나에서 7크로나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뒤 소비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이를 철회한 일도 있었다.

2크로나면 200원 남짓인데 그걸 인상한다고 반발하는 국민이나, 반발한다고 가격을 동결한 이케아나 둘 다 신기했다.

IKEA 스톡홀름 시티점

전 세계 460개 매장이 있는 이케아는 스웨덴의 국민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사는 네덜란드에 둬 고의로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2022년 회계 연도 매출은 약 4천670억 크로나(영업이익 220억 크로나)였는데 그중 스웨덴 매출은 5%에 불과했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케아 여러모로 재미있는 회사다.

이전 06화 '개편한 세상' 스웨덴, 버스 타는 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