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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26. 2023

'개편한 세상' 스웨덴, 버스 타는 개들

스웨덴에 오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거리에 개가 정말 많았다.

떠돌이 개는 거의 보지 못했고 대부분 견주와 함께 다니는 개들이었다.

한 두 마리는 기본이고 4마리 정도는 한꺼번에 데리고 다녀야 눈길이 갔다.

조그만 녀석도 있긴 했지만 중대형 개들이 많았다.

스톡홀름에서 목줄 착용은 의무였다. 입마개를 한 개는 더러 보긴 했지만 중대형견 의무사항은 아닌 듯했다.

유모차+개 끌고

웬만한 아동보다 덩치가 큰 대형견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조금 무서웠다.

신기한 건 스웨덴 개들은 덩치에 상관없이 잘 짖지 않고 성격이 순하다는 점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녀석들 중에서 짖는 걸 많이 못 봤다.

주로 산책 중 다른 개를 만났을 때 신경전을 벌이는 건 봤지만 사람을 향해 짖는 건 드물었다.

단 집주인 할머니 개 '싸싸'만 빼고.

사회생활을 배우는 기관이 있는 건지 스웨덴 개들은 교육이 잘 돼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만난 개

견주가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도 많았다.

물론 개 출입을 제한하는 공공장소나 기관 등도 있지만 버스나 지하철, 쇼핑몰 등 일상공간에서 개가 자연스럽게 돌아다녔다.

그래서인지 절대적인 수와 별개로 스웨덴에서 개를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만난 개들

지하철에서 개가 주인과 출입구를 넘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면 저절로 눈이 갔다.

개가 귀엽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한국에서는 너무 낯설기 때문인 듯했다.

전동차 안으로 들어온 개는 주인 손짓에 따라 보통 의자 밑에 앉거나 엎드렸다.

훈련을 받은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아무리 봐도 신기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강형욱이나 설채현 같은 동물훈련사들이 이곳에선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할 것 같았다.

지하철 탄 검은 댕댕이. 주인 옆에 얌전히 엎드려 있다

버스에서도 개가 승차하면 시선집중.

버스는 상대적으로 공간이 좁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싫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한 번은 개가 옆 승객 옷을 킁킁거리고 혓바닥으로 쓱쓱 핥기도 했다.

다행히(?) 그 승객은 통화 중이라 그걸 몰랐다.

개가 버스 좌석 아래를 차지해 사람이 앉지 못해도 승객 대부분은 신경 쓰지 않거나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견주 대부분은 개를 바닥에 뒀다.

스웨덴 지하철은 개 탑승이 허용되는 객차와 그렇지 않은 객차로 구분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버스나 지하철에 개 탑승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지하철에는 탑승가능, 탑승불가한 객차를 구분해 놨고 버스 2대를 붙여놓은 듯한 굴절버스에도 보통 뒤차량에만 탑승이 허용된다는 문구가 있었다.

스웨덴 버스엔 개를 태울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다

스웨덴에서 개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손으로 유모차 끌고 나머지 한 손엔 개 세 마리 목줄을 쥔 사람이었다. 또 한 남성은 지하철에서 중대형견 5마리를 데리고 탔는데 마주 보는 좌석 4개가 통째로 개들 차지였다.

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를 안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에스컬레이터에선 발이 끼는 등 안전문제 때문에 품에 안은 이들도 있었다.)

추운 날 개한테 신발이나 옷을 입힌 경우도 많이 못 봤다.

버스 타는 개들

개들은 주인과 함께 쇼핑도 자주 하러 다녔다.

자주 갔던 칼라플란역의 팰토베스텐(Fältöversten) 백화점 1층 통로엔 개주인끼리 인사하고 개들도 서로 냄새를 맡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트 등 상점 안까지 출입이 허용되지는 않았다.

'개는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재미있는 건 구석 벽면에 개 목줄을 묶어둘 수 있는 고리였다.

주인이 물건을 사는 동안 개가 홀로 기다리는 장소였다.

이곳엔 'hundar får vänta utanför'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스웨덴어로 '개는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주인이 없으면 불안할 수 있을 텐데 낑낑대거나 짖지도 않고 얌전히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트 앞 입간판에 매여 있는 개들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묵묵히 주인을 기다렸다.

얌전히 주인 기다리는 개들

개가 많은 데도 거리에 개똥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스웨덴 견주도 한국처럼 개똥을 의무적으로 치워야 했다.

수시로 개들은 거리에서 오줌을 쌌는데 물청소를 자주 하는 건지 거리에 개 오줌냄새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개똥은 잘 치우는데 말똥은 도로 군데군데 방치돼 대조적이었다.

기마부대 군인들이 한 번씩 도로에서 말을 타고 행진을 해서 멋졌지만 말똥 지뢰는 차가 밟고 지나다니고 생분해될 때까지 놔두는 것 같았다.

지자체 운영 개 놀이공원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곳곳에 개 놀이공원이 들어서고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공원이나 체육시설 자투리 공간에 개가 뛰어놀 수 있는 개 놀이공원이 잘 마련돼 있었다.

보통 개 놀이공원 울타리 안에서는 목줄을 풀 수 있는데 울타리가 없는 애견 쉼터에서도 견주 감독 하에 개들이 목줄 없이 뛰놀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도심에 천연 녹지나 공원이 많아 개주인들이 개를 산책시키러 많이 나왔고 개들은 그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며 냄새를 맡고 자유를 만끽했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없이 좋을 거 같았다.

개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스웨덴 도심 공원과 녹지

스웨덴에서는 개를 키우려면 지자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입양도 많이 하는 만큼 파양도 있겠지만, 길거리에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유기사례는 많지 않을 거 같았다.

집주인 할머니 개 '싸싸'는 스웨덴에서 유일하게 나한테 짖은 녀석인데 할머니댁에 초대받아 안면을 튼 뒤로는 더 이상 짖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싸싸가 나를 덮쳐 얼굴에 침 샤워를 했다. 개도 입냄새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개 유치원도 다니는 싸싸를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집주인 할머니 댁의 '싸싸'

싸싸를 비롯해 스웨덴 개들을 보면서 개에 급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이들과 아내한테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도 개를 키우자고 말한 뒤 무슨 종을 선택할지 토론도 했다.

그러다 스웨덴과 너무 차이 나는 환경에 단념했다.

역시 한국에서 개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서 자가용에 탄 개를 많이 볼 수 있는 건 개를 데리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법적으로 원천 금지는 아니고 전용 케이지에 넣어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순 있다고 하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개 관련 사업이 번성하고 있는 듯하다.

개와 관련된 제약이 많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상업적인 공간, 시설, 아이템 등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상술이거나.

2021년 국내 한 언론 기사에서 스웨덴 개 관련 사업가가 국내 반려동물 프리미엄 문화공간을 둘러보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 관계자는 "한국 사람들이 개를 단순히 가족이 아닌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웨덴에서도 개는 가족이지만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고 '개는 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를 사람 대하듯, 내 아이를 대하듯 세심하게 케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게 이상하다는 건지 부럽다는 건지 문맥만 보고 알 수 없었지만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개는 개인가 사람인가.

개에 대한 규제와 제약이 많은 사회에서 개를 더 애지중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분명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스웨덴은 개 키우기 좋은 나라다.

개 입장에서는 천국이 따로 없는 셈이다.

골프장 산책하는 견주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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