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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6. 2023

아이 어른 모두 행복한 동화 속 세상

유니바켄(Junibacken).

이곳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일종의 어린이 놀이공원이자 '동화 속 세상'이다.

스웨덴어로 굳이 해석하자면 '6월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웨덴 여름의 절정인 6월, 유르고르덴 초입에 자리 잡은 위치와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3명이라 스톡홀름에서 다른 곳은 제쳐두고라도 유니바켄은 꼭 가고 싶었다.

2018년 스톡홀름에 왔을 때 한 번 갔고 이번엔 아예 가족 모두 연간권을 끊어 7개월간 4번 다녀왔다.

유니바켄 연간권은 아이 어른 모두 3번째 입장 때부터 순수 이득 구간에 들어간다.

1년에 3번 이상 유니바켄에 간다면 연간권을 사는 게 좋겠다.

유니바켄에 신나게 노는 막내

유니바켄에 몇 번 가다 보니 첫 방문 때의 기분, 느낌, 감정이 잊혔다.

익숙해져서인지 그냥 별생각 없이 놀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한테 물었다

유니바켄이 왜 좋아?

"그뢰나룬드(Gröna Lund 스톡홀름의 대표 놀이공원) 같은 곳은 세계 어딜 가도 많아서 경험하는 것도 비슷해. 그런데 유니바켄은 좀 달라. 어른이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삐삐의 집에 들어가면 집안 구석구석 소품 하나하나 다 만져볼 수 있고 움직이기도 해. 겉만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게 아니라 디테일이 살아있어. 특히 동화를 들으며 타는 기차는 정말 환상적이야. 아이를 위한 공간이지만 어른들도 꼭 와볼 만한 것 같아."


아내의 말속에 대체로 유니바켄이 특별한 이유가 다 들어있구나 생각했다.

정말 공감했다.

아마 그래서 몇 번이고 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싶다.

막내가 '아빠, 또 삐삐 가자'고 하면 이제는 약간 식상하면서도 막상 가면 재미있게 놀다 오는 곳이 유니바켄이다. (막내는 유니바켄을 삐삐라 부른다.)

'동화 속 기차'는 리프트를 타고 경험하는 동화 속 마법의 세계다 (사진=유니바켄 홈페이지)

'동화 속 기차'(Sagotaget)는 유니바켄의 하이라이트다.

우리 가족은 항상 유니바켄에 가면 이 기차부터 탄다.

이 기차여행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마지막 동화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이어지는 공간 속에 인형, 조명, 소리, 공간, 대화, 내레이션 등의 요소를 버무려놓은 환상 체험이다.

4~5명이 탑승하는 조그만 리프트를 타면 눈앞과 발밑에 마법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스웨덴어를 비롯한 15개 국어로 된 내레이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 해설은 없다.

스웨덴어 버전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육성이 나온다고 하는데 영어만 선택하다 보니 들어보진 못했다.

'동화 속 기차'

유니바켄 측은 생전 린드그렌과 함께 협력해 2년 이상이 걸려 이 놀라운 마법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유니바켄과 '동화 속 기차'는 1996년 6월 8일 첫 선을 보였다.

20여년 전 이 같은 세트를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고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과 세트의 디테일이 너무 정교해 감탄을 자아냈다.

린드그렌의 동화를 바탕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 만든 공간이라 영속성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한번 타고나면 또 타고 싶어지는 기차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번 입장에 한 번밖에 타지 못했다.

유니바켄 2층 삐삐의 집

기차를 타고 나오면 곧장 2층 삐삐의 집으로 연결되는데 이곳 역시 유니바켄의 심장이다.

넓은 나무 바닥 광장에 나무로 지어진 삐삐의 집은 계단이나 미끄럼틀로 오르내릴 수 있다.

집 내부는 마치 동화 속 삐삐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놨다.

그냥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고 미끄럼틀을 타고 주르륵 내려오며 삐삐가 된 것처럼 놀았다.

말괄량이 삐삐 연극 보는 관객들

이곳은 주말 하루에 2~3번 삐삐 연극을 했다.

스웨덴어 연극이라 온전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해 볼 만했다.

삐삐의 집 옆에는 실제 크기의 말 조각상이 있는데 이곳 역시 아이들이 좋아했다.

꼭 한 번씩 말등에 올라타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다. 동화 속에서 이 말은 삐삐와 같은 집에서 사는 친구였다.

서커스장을 연상케 하는 식당도 합리적인 가격에 미트볼이나 팬케이크 등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쇠데르말름과 강물이 보이는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작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서커스장 같은 유니바켄 식당

1층엔 북유럽 작가들의 캐릭터와 각종 소품 등으로 꾸며놓은 여러 섹션의 동화광장을 비롯해 기간마다 테마가 달라지는 체험공간 등이 있었다.

소규모 극장도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북유럽 작가 동화를 주제로 한 전시회나 연극이 1년에 1500회나 열린다고 했다.

유니바켄 야외의 무민 놀이터

야외 마당엔 핀란드 동화 캐릭터인 무민을 주제로 한 놀이터가 있었다.

유니바켄 내부에서 실컷 놀고 난 아이들의 2차 놀이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남녀노소가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도 디자인이나 소품 등이 아기자기해 화장실 이용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출구 옆엔 스웨덴에서 가장 크다는 어린이 서점과 삐삐나 무민 등 캐릭터 제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굳이 사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진=유니바켄 홈페이지)

유니바켄이 개관한 지 8개월이 지나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유니바켄을 기획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유니바켄 같은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런 어린이 박물관이 있을 것이라고 도대체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기획에 참여했던 린드그렌도 유니바켄이 이런 환상적인 공간이 되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유니바켄 측은 '우리의 야망은 아스트리드의 정신으로 계속 창조하고 어린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하는 것이다. 린드그렌 책에 나오는 삐삐 같은 캐릭터처럼 어려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것이다'라고 유니바켄 운영 취지를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독서 진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모든 어린이의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니바켄을 소유한 비영리재단은 유니바켄을 정부 보조금 없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하지만 어떠한 이익도 분배하지 않고 모든 잉여금은 사업에 재투자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오롯이 어린이만을 생각하고 어린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며 때론 말괄량이 삐삐처럼 어른에게 도발적인 질문도 던질 수 있는 어린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유니바켄은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곳곳이 낡고 손때가 묻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곳은 아이들의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 가치가 생기는 공간 같았다.

린드그렌 등 북유럽 작가들의 동화에 아이들의 에피소드가 담겨 새로운 이야기가 되듯.

모든 아이들의 행복과 평등을 위한 유니바켄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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