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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05. 2023

돈 안 되는 자연에 투자하는 사람들

'도심 속 자연은 평화와 휴식을 제공한다'


2022년 7월 말 스웨덴에 왔을 때 굴마르스프란 역 주변에 살았다.

교통중심지라 항상 사람들이 북적댔지만 동쪽으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넓은 공원이 있었다.

서쪽으로는 Årsta 자연보호 구역이 강을 따라 이어졌다.

숲 속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고 산책 또는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야외 운동시설도 있어 걷다가 잠시 근력운동을 할 수 있었다.

나카 자연보호구역 라이딩

한 번은 자전거로 멀리 가려고 마음먹었다. 5분 정도를 달렸더니 정말 큰 숲과 녹지가 나타났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이런 광활한 숲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카 자연보호구역이라고 했다.

화로대 같은 곳에 불을 피워 소시지를 구워 먹는 가족을 봤는데 꽤나 신기했다.

스웨덴에서는 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 곳곳에 불을 피울 수 있는 지정 장소가 있었다.

자연보호구역 안에는 골프장이 있어 시민들이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

혼스툴역 인근 공원 강가 풍경

다음엔 쇠데르말름 서남쪽 강변을 걸었다.

에릭스달(Eriksdal)에서 혼스툴 지하철역까지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과 녹지는 핫플레이스였다.

많은 시민이 산책하며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크고 작은 공원이 서로 연결돼 있었다.

군데군데 UTEGYM이라는 나무로 만든 일종의 야외체육관이 있었는데 운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도심 속 자연과 녹지, 강이 가까웠고 사람들은 그걸 즐길 줄 알았다.

야외체육관(UTEGYM). 나무로 된 운동기구가 신기했다

두 달간 굴마르스프란에서 살다가 이사를 가야 했는데 주변에 이런 자연을 두고 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어 너무 우울했다.

이사한 곳은 스톡홀름 북동쪽 섬인 리딩외였다. 새 집은 뒷문으로 나가면 바로 숲과 연결됐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우거진 나무가 보이고 새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너무 커 잠을 깰 때도 있었다.

어릴 적 만화에서나 봤던 법한 딱따구리가 나무를 찧는 소리도 들렸다.

매일 자연휴양림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굴마르스프란 주변의 공원과 자연보호구역, 강, 녹지에 비하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을 돌아봤는데 리딩외 자체가 하나의 큰 섬이라 강변길이 아름다웠다.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았다.

리딩외 한가운데엔 섬 전체 크기의 약 3분의 1 면적인 자연보호구역이 있었다.

스톡홀름처럼 야외체육관이나 자전거 도로, 산책길이 잘 조성돼 있었다.

이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이곳 역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리딩외 강변에서 바라보는 풍경

리딩외엔 2개의 자연보호구역과 85개에 이르는 공원이 있다고 했다.

전체 녹지 면적은 리딩외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데 지자체는 자연보호구역을 추가로 넓히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리딩외시의 홈페이지에서 본 글은 어떤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리딩외에서 당신은 공원과 자연에서 결코 멀지 않다. 어느 누구도 녹지까지 300m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안개가 낮게 깔린 야뎃(Gärdet)역과 칼라플란(Karlaplan)역 인근 Ladugårds-Gärdet 아침 풍경.

첫째, 둘째가 다니는 학교 부근인 야뎃(Gärdet) 역 주변에서는 스웨덴에 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봤다.

광활한 초원이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졌다.

로열 유르고르덴(Kungliga Djurgården)이라는 왕립 국가도시공원의 일부분인 Ladugårds-Gärdet이었다.

북쪽의 Ulriksdal, Sörentorp에서 남쪽의 Djurgården, Fjäderholmarna까지 로열 유르고르덴 길이는 1마일(1.6km) 이상 뻗어 있고 넓이는 1천만 제곱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 스웨덴 왕의 사냥터였다가 현재는 공원, 박물관, 숲, 스톡홀름대학교, 기타 교육 및 연구 기관 등이 산재해 있다.

800종 이상의 다양한 꽃식물, 1200종 이상의 딱정벌레 종, 약 100종의 조류가 서식해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이 때문에 스톡홀름의 녹색 오아시스라고 불린다.

스톡홀름에서 1천만m2 면적에 달하는 로열 유르고르덴

로열 유르고르덴 안에 있는 Hagaparken 역시 드넓은 잔디 초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잔디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피크닉을 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Ladugårds-Gärdet이나 Hagaparken은 딱히 할 일이 없으면 가는 힐링장소이기도 했다.

스톡홀름 대표 관광지인 스칸센, 로젠달정원 등이 있는 유르고르덴도 로열 유르고르덴에 속해있다.

이 로열 유르고르덴은 2023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관광박람회에서 Green Destinations Story Award를 수상했다.

이 상은 기후 변화, 환경 파괴와의 싸움에서 지속가능성을 보여준 여행지, 관광지에 수여된다.

로열 유르고르덴은 스웨덴 문화유산과 현대적인 지속 가능한 사고를 연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톡홀름 11개 자연보호구역 (출처 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톡홀름에서는 로열 유르고르덴 외에도 11개 자연보호구역과 도심에 19개의 작고 조용한 공원이 있다.

스톡홀름시는 이곳에서 숲 하이킹을 하고, 식물을 발견하고, 표시된 트레일을 따라 걷고, 수로에서 노를 젓고, 동굴 사이를 오르고, 낚시를 하고, 새를 찾고 피크닉이나 수영을 하는 등 자연을 즐기라고 말한다.

예외는 있지만 열매나 버섯 채집이나 특정한 조건 하에 낚시도 허용된다.

스톡홀름시는 이에 더해 Hässelby Villastad와 Kyrkhamn에 새로운 자연보호구역을 계획하고 있다.

날씨 좋은 날 Hagaparken 풍경

그러면 스웨덴은 왜 도심 속 자연의 접근성을 높이고 그 범위를 넓혀가는데 막대한 예산을 쓰는 걸까.

단지 스웨덴 국토의 69%가 숲이라서 그런 것인가.

스톡홀름시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몇몇 힌트를 발견했다

스톡홀름시는 '스톡홀름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보호구역은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점점 더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도심 속 자연은 평화와 휴식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또 '자연에 자주 나가는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집중하기가 더 쉬우며 덜 아프게 된다'고도했다.

즉 도시 구성원의 건강과 집중력, 휴식을 위해 자연이 중요하고 그건 곧 사회의 건강함과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시민이 자연을 자주 접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의료비나 관련 예산도 적게 들고 장기적으론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건강수명도 길어지지 않을까.

너무 당연한 말인데 우리나라는 기존에 있는 숲이나 녹지도 없애고 아파트나 콘크리트 구조물만 주야장천 짓고 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 면적의 약 2배다.

인구는 대략 1천35만명으로 5천155만명인 한국의 약 5분의 1이다.

한국이 스웨덴에 비해 자연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지 국토 대비 인구수가 많기 때문인가 자연에 대한 인식의 차이인가 고민해 볼 문제다.

쿵스홀멘 Rålambshovsparken 오후

스웨덴에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가까이 있는' 자연이었다.

주말에 마음을 먹고 차를 타고 가서 잠시 보고 오는 그런 자연 말고 일상 속에서 숲 냄새를 맡고 딱따구리 소리가 들리고 다람쥐가 뛰노는 매일매일이 자연휴양림에 와 있는 듯한 삶.

아내와 그런 말을 나눈 적이 있다.

'굴마르스프란에서 이사할 때 익숙해진 자연과 멀어질 것 같아 정말 슬펐는데 살다 보니 스웨덴의 자연은 어디든 다 좋은 것 같다고. 많이 좋냐, 아주 많이 좋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는 스웨덴의 접근성 좋은 자연이다.

유르고르덴에서 유모차 세워두고 낚시하는 아빠, 랑홀멘에서 카약 타는 사람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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