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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7. 2023

10대 자전거도시에 스톡홀름이 없다고?

스톡홀름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자전거 타기였다.

2018년 여행 왔을 때 이렇게 예쁜 도시를 버스나 지하철 창을 통해서만 보는 건 너무 아쉬웠다.

그땐 여행이었으니까 1년 살이를 하는 이번엔 제대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얼굴에 맞닿는 바람, 햇볕 그리고 시야에 생생하게 들어오는 녹색의 공원, 거리 풍경, 사람들, 이게 바로 스톡홀름이었다.

스톡홀름 스칸스툴 다리의 자전거 도로

부산에 있을 때도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지만 자전거 도로가 좋은 듯 좋지 않았다.

수영강 주변은 우레탄 전용 도로가 깔려 꽤 괜찮았는데 그 외에는 가다가 끊기고 연속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게 뭔가 마음을 먹고 해야 하는 그런 일이었던 듯했다.

주말이나 시간 날 때 기분을 전환하거나 가벼운 운동 목적으로 하는 레포츠였다.

그런데 좀 멀리 가려고 하면 자전거 도로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자전거 도로가 없어 차도로 들어가면 버스나 트럭 등을 신경 써야 했고 마음이 늘 불편했다.

스톡홀름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

내가 본 스톡홀름의 자전거 도로 환경은 정말 부러웠다.

자전거와 헬멧만 있으면 그냥 나가서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면 됐다.

여긴 자전거가 레저라기보단 생활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게 스톡홀름과 부산의 자전거 라이프 차이였다.

물론 스톡홀름에도 레저나 운동 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봤던 건 회사나 학교에 가며 자연스럽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처럼 자전거가 생활의 일부가 되는 그런 삶이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쫄쫄이 바지를 입지 않아도 되고, 자전거로 어디 들리려면 주차 걱정 도둑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전거 도로가 끊어져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에 뛰어들어도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고, 학교나 회사, 마트, 유치원 등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 행위 자체에 불편함이나 꺼려짐이 없는 삶.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며 진정 그 도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 봤다.

20대 때부터 나름 자전거를 놓지 않고 타온 나는 이런 스톡홀름의 자전거 인프라를 그대로 들여오고 싶을 정도로 진심 부러웠다.

스톡홀름 자전거족

스톡홀름의 자전거 인프라가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가.

우선 자전거 전용 도로 길이가 114km다. 주변 지자체로 뻗은 도로까지 포함하면 자전거 도로 길이는 더 늘어난다.

사실 말로 해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스톡홀름시 홈페이지의 자전거 도로 현황 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된 자전거 도로가 마치 모세혈관처럼 도심 곳곳에 펼쳐져 있다.

스톡홀름과 주변 자전거 전용 도로 현황 지도, 스톡홀름 자전거 도로 길이만 총 114km이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캡처)

공원이나 숲은 기본이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엔 반드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듯했다.

교통량이 적은 이면도로의 경우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도 그만이었다.

스톡홀름에서 도로는 자동차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도로 가장자리 혹은 중간에 일정 넓이의 자전거 전용 도로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보행자 전용 도로와 사이좋게 나란한 자전거 도로도 있었다.

자전거로 갈 수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도로만 잘 돼 있는 게 아니다.

자전거 주차공간도 많다.

2023년 현재 스톡홀름에 약 3만개의 크고 작은 자전거 주차 공간이 있다.

스톡홀름시는 매년 2천~3천개씩의 주차장이 추가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 자전거 주차공간 현황 지도. 스톡홀름 전역에 약 3만개가 있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캡처)

자전거 주차 장소는 자전거 1~2대를 자물쇠로 묶을 수 있는 볼라드나 앞바퀴 홀더가 있는 자전거 스탠드, 자전거 여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의 랙 등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

이 시설은 모두 무료였다.

사실 자전거 주차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도난인데 약간의 비용으로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는 주차 공간도 있었다.

오덴플란 역에 있는 유료 자전거 보관소.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도난 걱정이 없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캡처)

대표적인 곳으로 오덴플란(Odenplan) 역의 유료 자전거 차고지였다.

2016년 8월에 문을 연 이곳은 300개 넘는 자전거 랙에 전기 자전거용 충전시설도 30개 있다고 했다.

헬멧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 공용 펌프대, 세면대도 있었다.

기본 랙의 경우 월 100크로나(1만2천원), 헬멧 보관이 가능한 랙은 125크로나, 전기충전이 가능한 랙은 200크로나다.

랙을 빌린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고 보관소 내부가 실시간으로 카메라로 모니터 되다 보니 자전거 도둑맞을 일은 없다고 한다.

자전거 스피너. 최대 24대의 자전거를 안전하게 주차 가능하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캡처)

자전거 스피너라는 전자동 자전거 차고도 있다.

높이 1.8m, 지름 5.5m 규모의 원형 자전거 보관소는 최대 24대의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다.

전자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차랙이 회전한 뒤 출입문 부근에 서는데 자전거를 주차하고 자물쇠를 채우는 방식이다.

주차하고 나오면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요금은 월 200크로나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비 맞을 염려도 도난 걱정도 없어 자출족에게 좋은 선택이다.

롭스텐(Ropsten) 역에서 실제 이 자전거 보관소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자전거가 1대도 보관돼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용이 들고 시행 초기다 보니 아직 홍보가 덜 된 듯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나무 기둥, 철조망, 울타리 등 자물쇠로 자전거를 채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주차하는 게 더 익숙해 보였다.

자전거 주차 상자에 자전거를 넣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자전거 주차 상자도 있다고 한다.

위 사진처럼 자전거를 통째로 랙에 거치해 상자에 넣는 방식이다

월 요금은 150~200크로나라고 한다.

각자의 멋으로 자전거를 타는 스톡홀름 시민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톡홀름시는 2012~2022년까지 자전거 기반 시설에 약 20억 크로나(2천400억원)을 투자했고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 확장, 자전거 친화적인 신호등 도입, 자전거 도로 유지 관리 개선 등에 계속 예산을 쏟을 계획이다.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자전거, 사이클링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스톡홀름시는 일부 지역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우선하는 전용도로도 추진 중이다.


스톡홀름시의 목표는 무엇일까.

2030년까지 출퇴근 시간 교통량의 자전거 분담률을 15%로 만들겠다는 거다.

출근할 때 100명 중 15명 정도 자전거를 타는 비율인데 언뜻 이 수치가 높은 것인지 느낌이 안 온다.

2018년 8월 31일 머니투데이 '자전거는 맞고 종로는 틀리다' 기사에서 유럽연합과 OECD의 주요국 자전거 수송분담률 통계가 나오는데 네덜란드가 36%로 가장 높고 덴마크 23%, 스웨덴과 일본 각각 17%, 핀란드 14%, 벨기에 13%, 독일 12% 순이다.

한국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2%다.

이 통계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자전거 수송분담률 15%는 매우 높은 수치라는 거다.

스톡홀름 자전거 전용 도로 (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자전거 출퇴근족을 늘리는 것은 도심 교통량과 정체를 줄이고 환경도 살리는 길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를 타보면 출퇴근 시간 외엔 거리에 자전거가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 출퇴근 시간엔 주요 교차로에서 자동차처럼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출퇴근 시 충분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굳이 레저로 자전거를 타지는 않을 것 같다.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는 생활이었다.

유아 안장 장착된 자전거
자전거에 아이 태우고 가는 부모

출퇴근 시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풍경 중 하나는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부모의 모습이다.

나도 스웨덴에 오기 전 하막스나 툴레의 유아 자전거 안장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근데 유아 안장 구입을 고민한 건 어디까지나 주말 나들이용이었지 출근 목적은 아니었다.

아이 동반 자전거 출근은 부모가 자전거로 출근해야 가능한 일이다.

차로 출근하면 당연히 아이를 차에 태워 나가는 거고 출근시간 초등학교 주변이 승용차로 붐비는 거 아닌가.

또 하나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스톡홀름 시민의 80%는 직장까지 자전거로 30분 미만 거리에 있고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15km 이내엔 일반적으로 출퇴근 시간에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빠르다는 것이 스톡홀름시의 설명이다.

구글맵으로 검색해 봐도 동일한 목적지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았다.

이러니 어찌 자전거를 안 탈 수 있겠는가.

스톡홀름 정도면 세계에서 손이 꼽히는 자전거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구글 알고리즘으로 뜬 기사에서 세계 10대 자전거 도시에 스톡홀름이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뮌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이 상위권에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북유럽 여행 때 방문한 코펜하겐에선 확실히 도로에 자전거 탄 사람들이 많긴 했다.

뮌헨, 암스테르담은 도대체 스톡홀름보다 어떻게 자전거 인프라가 더 좋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스톡홀름 Gardet 역 부근 자전거 도로
스톡홀름 유르고르덴 입구에서 만난 자전거족

자전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물론 사면 되지만 빌려주기도 한다.

스톡홀름 E-BIKE라는 공영 자전거 대여제도는 자전거 도시 스톡홀름의 명성과는 달리 놀랍게도 지난해 5월 시행됐다.

난 스톡홀름에서 자전거를 사기 전까지 7~8월에 한 달짜리 패스를 끊고 타봤는데 꽤 괜찮았다.

스톡홀름 E-BIKE 앱, 패스 가격

먼저 앱을 깔고 패스 결제를 한 뒤 도심 곳곳에 있는 스테이션에 주차된 자전거의 코드를 찍으면 된다.

가격이 참 착했다.

하루 패스는 천원이 조금 넘는 11크로나(1천300원), 한 달 패스는 35크로나(4천200원), 일 년 패스는 157크로나(1만8천원 정도)다.

3개의 패스 모두 첫 1시간 30분간은 무료이고 이후 한 시간마다 11크로나씩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하루 1시간 30분 이내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면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단 자전거를 사용한 뒤 꼭 스테이션에 주차해야 한다.

스톡홀름 E-Bike
스톡홀름 E-Bike 스테이션

하지만 시행 초창기이고 자전거 수가 모자라서 그런지 스테이션에 가면 자전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자전거와 앱의 통신이 원활하지 못해 못 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개선됐는지 모르겠다.

지난겨울에는 겨울용 타이어 교체로 2주간 대여 서비스가 중단돼 기존 패스 이용자는 한 달에서 최대 석 달의 보너스 기간 연장 혜택을 받았다.

스톡홀름시는 현재 75개 스테이션을 올해 4월까지 300개로, 약 1천대인 전기자전거를 5천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E-Bike 프레임이 부러져 탑승자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해 현재 자전거 안전 전수 조사로 E-Bike 대여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스톡홀름시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자 현재 사업자와 다음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는데 공영 자전거 운영에 우여곡절이 많은 것 같다.

눈길에도 자전거는 간다
스톡홀름 눈길 라이딩 (오른쪽 사진 출처는 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자동차 운전자의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배려나 양보도 인상 깊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좌회전을 하거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가 먼저 가도록 기다려줬다.

단 한 번도 경적을 울린다거나 자전거를 앞지르지 않았다.

자동차에게 자전거 전용도로는 불가침의 영역이고 어쩌다 차도로 넘어온 자전거는 배려의 대상이었다.

자전거뿐 아니라 보행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부근에서 도로를 건너겠다는 조금의 움직임이 있으면 지나가는 자동차는 거의 자동으로 멈춘다.

정지선을 지킨 다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간 다음 출발한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한국에서 살다가 스웨덴 도로에서 사람대접을 받으니 신기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를, 자전거가 보행자를 배려하는 게 원칙인 듯했다.

릴리에홀멘 부근 다리였는데 영도다리인 줄...범선 같은 배가 지나가니 다리가 번쩍 들렸다

스톡홀름은 겨울이 긴 도시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좀 덜 탈 줄 알았고 추워서인지 실제 그랬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이 날씨에 어찌 탈까' 싶은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구멍이 많이 없는 겨울 전용 헬멧을 쓰고 아님 비니와 넥워머, 마스크를 쓰고 헬멧을 쓴다든지 장갑을 착용하고 완전 중무장을 한 채로 추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스톡홀름 사람들은 자전거에 진심이었고 자전거가 생활의 일부였다.

브롬톤 '드림 컴 트루'

난 여기 와서 몇 년에 걸쳐 고민만 하던 브롬톤을 샀다.

부산에선 구하려 해도 쉽지 않고 가격도 가격이라 늘 생각만 하다 포기했는데

여긴 매장 방문 당일 색깔, 사양을 고르고 바로 구입했다.

(브롬톤을 사는 데 네이버 블로거 '돼지파나'님의 덕을 봤다. https://blog.naver.com/yoonhj87/222778006338)

(자전거 도시인 스톡홀름에 브롬톤 정션이 왜 없는지 모를 일이다)

혼자 타면 재미없으니 이왕이면 2대를 샀다.

아내와 아이들과 따로 또 같이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5월부터 날씨가 풀리면서 브롬톤을 타고 스톡홀름 도심이나 리딩외 등지를 잘 구경하고 있다.

도심도 좋지만 새파란 하늘과 구름, 나무를 보며 숲과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면 힐링이 따로 없다.

스톡홀름은 아름다운 도시다.

자전거를 탄다면 그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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