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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3. 2023

Somewhere in Stockholm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 다섯 가족을 태워준 대형택시. 짐칸엔 스웨덴으로 갈 이삿짐이 한가득이다.

스웨덴에서 조금 다른 삶을 꿈꾸다.


스웨덴과의 인연은 201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돌도 안 된 막내 포함 삼남매를 데리고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북유럽 3국 여행을 떠났다.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수단으로만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당시 아내는 막내 모유 수유까지 했다.

그때 들렀던 스웨덴 스톡홀름은 덴마크 코펜하겐이나 핀란드 헬싱키와는 또 달랐다.

세계 최고라는 스웨덴 여름의 끝자락에 이곳저곳을 보러다니며 환상적인 햇볕과 하늘, 구름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 와서도 자꾸 생각났다.

그것이 스웨덴과의 첫 인연이었다.

다시 스웨덴에 갈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수하물 부치기 전. 아직 스웨덴으로 간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2022년 3월 대선 열기가 달아올랐던 그때 아내의 해외연수 합격 소식을 들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힘들었던 백수생활을 지나 첫 직장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해외연수 길은 최근 몇 년 새 더 좁아졌고 세 아이의 엄마로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토익, 영어회화, 연수계획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응시한 것처럼 아내에 빙의했다.

아내가 2년가량 모든 걸 쏟아부은 시험인 줄 알기에 연수 합격자 발표 소식은 내가 합격한 것인 양 기쁜 일이었다.

첫째가 인천공항에 계류 중인 항공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육아휴직을 써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초등학생이 돼 버린 첫째 둘째와 달리 유치원생인 막내 덕분에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고, 선후배의 배려 속에 아내 해외연수를 따라가게 됐다.

다람쥐 쳇바퀴 같던 16년 직장생활 뒤의 첫 쉼표였다.

그것이 내 삶의 두 번째 스톡홀름이 될 줄은 몰랐다.

핀에어 항공기 안에서 바라본 달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 5시간 30분, 수속까지 3시간 30분,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14시간 30분, 헬싱키 경유 2시간 30분, 헬싱키에서 스톡홀름까지 1시간 15분 등 총 27시간이 넘는 여정은 무척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2018년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온 곳에 다시 가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장시간 비행에도 마스크 끼고 꿋꿋하게 잘 버텨준 첫째

한국에서 익숙해진 생활을 접고 엄마, 아빠를 따라나선 삼남매는 앞으로 닥쳐올 시련과 고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장난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중간 경유지인 핀란드 헬싱키 반타 공항

이민가방과 대형 캐리어에 23kg씩 꾹꾹 눌러 담은 수화물만 8개, 개인 가방은 5개였다.

코로나로 항공노선이 축소돼 운영되던 시기라 해외행 비행기는 거의 인천공항에서 출발했다.

할 수 없이 승합차를 개조한 대형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애들 태워 집을 떠나는데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짐을 다 싣고 다섯사람이 탈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는데 다행히 되긴 됐다.

인천공항에 내려서도 그 많은 짐을 끌고 다니며 겨우 수속을 마쳤을 때 참았던 긴 한숨이 나왔다.

그 먼 여정을 어마어마한 짐과 함께 애 셋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좌충우돌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스톡홀름 알란다(Arlanda)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번에는 정말 짐을 잘 꾸릴 자신이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겠지.)

그렇게 원형돔인 아비치 아레나가 보이는 Gullmarsplan의 한 아파트에서 1년의 스톡홀름 생활이 시작됐다.

이제 정말 스웨덴으로 간다.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스웨덴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으로 가는 항공기 환승.

많은 해외연수자들이 미국으로 간다.

왜 미국을 많이 선택할까 생각해보면 우선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일 테고 영어의 본고장에서 영어를 익히기에도 좋을 테고 여러 선임자들의 경험이 후임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가족은 조금 쉬운 길을 놔두고 답 안 나오는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몇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때 그냥 남들 가는 대로 미국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걸 경험하고 싶었고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우릴 스웨덴으로 이끌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을 택한 건 운명이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사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제야 몇 자 끄적여 보는 건 그동안 참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일과 게으름 때문이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최근 뭔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 매일 잠을 못 이뤄 갑자기 자다 말고 일어나 댓바람에 지나간 기억을 떠올려본다.

앞으로 부지런히 쓸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은 I don't know.

다만 열심히 써보겠다. 이 글이 우리 가족의 역사이자 삶의 흔적이 될테니까.

스웨덴 굴마르스프란에서 얻은 월셋집에서 시작한 스톡홀름 라이프. 큰 창문으로 보이는 스톡홀름 도심이 무척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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