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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2. 2023

‘방학 잘 보내’ 청소년 교통티켓이 무료

2018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북유럽 3개국 여행을 했을 때 놀랐던 게 있었다.

당시 막내가 돌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유모차에 태운 채 가지 못한 곳이 없었다.

도심 대중교통은 물론 열차나 배 등 어떤 교통수단이든 이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간혹 없는 경우 계단에 유모차를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도 있었다.

특히 유모차를 대하는 덴마크 코펜하겐, 스웨덴 스톡홀름, 핀란드 헬싱키의 대중교통의 정책이 조금씩 달라 흥미로웠다.

3국의 버스는 모두 발판 높이가 낮은 저상버스였다.

코펜하겐의 경우 유모차를 버스 중간 문을 통해 싣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운전사가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는 느낌이었다.

스톡홀름에서는 버스에 유모차를 싣고 타는 부모 한 명의 버스 요금을 받지 않았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가 버스 중간문으로 탑승해 유모차를 고정시킨 뒤 교통카드를 결제하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정책은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오로지 승차할 때 아이만 신경 쓰라는 거 아니겠는가.

헬싱키에서는 놀랍게도 유모차를 끄는 부모 한 사람에 대해 버스, 지하철, 열차, 트램 등 모든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였다.

감동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저력이 느껴졌다.

한국 정부나 지자체가 출산율이 낮다고 아기 좀 나으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이 정도 정책은 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스톡홀름 시내버스에 유모차 실는 모습

한국에선 어린아이가 있으면 자동차 없이 생활하기 대단히 불편하다.

유모차를 버스에 싣기도 쉽지 않고 운전사나 승객들의 배려도 아쉽다.

지하철은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있어 괜찮지만 유모차만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은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부모들은 아이가 생기면 빚을 내서라도 자가용부터 사려고 한다.

유모차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면 부모가 굳이 차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유모차 친화적인 대중교통 환경을 만들면 아이가 있는 부모들의 차 구매가 줄어들 것이고 거리에 차가 감소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이고 환경도 살릴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대중교통 정책은 좁은 국토에 너무 차가 많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나라에선 아이 있는 부모가 유모차를 가지고 외출할 때 가볍고 작게 접히는 휴대용을 선호하는 듯하다.

계단을 마주치면 유모차를 접어서 메고 아이를 안아야 하는 경우가 제법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북유럽에서는 가방, 유아용품, 인형 등을 다 실을 수 있는 풀사이즈 유모차가 많이 보여 인상적이었다. 유모차가 다니기 힘든 길을 만나 유모차를 접거나 아이를 안아야 하는 상황이 좀처럼 생기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중교통은 물론 사회 전반에서 유모차에 대한 우선권이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유모차 친화적인 정책, 사회 분위기 덕분에 덴마크, 스웨덴을 거쳐 마지막 핀란드 헬싱키까지 편하게 유모차를 끌고 여행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 대중교통 SL

그러다 4년이 지나 스웨덴에 오니 아이들이 커서 유모차를 끌고 다닐 일이 없었다.

스톡홀름 거리에는 여전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나 라테 파파들이 많았다.

스웨덴에서는 아빠의 육아휴직이 당연시돼 낮시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끄는 남성을 흔히 라테 파파라고 불렀다.

다섯 살이 된 막내는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였고 초등학생인 첫째 둘째는 할인 요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 대중교통은 공영제다.

스톡홀름 대중교통 업체는 SL(Storstockholms Lokaltrafik)이라고 부르는데 버스, 지하철, 트램, 통근열차, 셔틀 보트를 SL 카드 한 장으로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실물카드를 사서 충전해도 되고 앱을 다운로드해 큐알코드처럼 생긴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교통카드를 터치하거나 큐알코드를 찍고 탑승했다.

6세 이하는 대중교통을 공짜로 탈 수 있고 20세 이하나 65세 이상은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었다.

(부산, 서울 등 대부분 도시에서 65세 이상의 요금 무료 정책이 지하철 적자를 유발해 유료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스톡홀름은 65세 이상에 요금을 할인해 줄 뿐 무료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지하철 요금 무료 정책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복지정책임엔 틀림없다.)

SL 카드

스톡홀름의 대중교통 요금은 비싼 편이다.

2023년 당시 1회권은 성인은 39크로나(4천800원가량), 20세 이하 65세 이상은 26크로나(3천200원가량)였다.

처음엔 대중교통 요금이 너무 비싸 어디 돌아다닐 생각을 못했다.

스톡홀름 시민들은 이렇게 비싼 대중교통 요금을 어떻게 내고 사는 걸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대부분 한 달권, 3개월 정기권, 1년 정기권을 사용하는 듯했다.

스톡홀름 트램(spårvagn)

기한 내에 버스나 지하철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7세부터 11세까지는 주말에 부모가 동승할 경우에 한해서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였다.

정확히는 금요일 정오부터 일요일 자정까지다.

주말에 부모들이 아이들과 마음껏 놀러 다니라는 배려 아니겠는가, 놀라웠다.

7~11세 아동은 주말에 부모와 함께라면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라는 SL 안내문

주말뿐만 아니었다.

공휴일 전날 오전 0시부터 공휴일 당일 자정까지, 크리스마스 휴가기간인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등에 부모와 함께 하는 7~11세 아동의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였다.

20세 미만 학생을 대상으로 스쿨티켓과 레저티켓을 판매했다.

스쿨티켓은 봄학기, 가을학기 기간 월~금요일 오전 4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었다.

가격도 봄학기 6개월간 1천20크로나(약 13만원), 가을학기 4개월간 스쿨티켓은 810크로나(약 10만원)로 저렴했다.

두 아이 통학용 스쿨티켓을 끊으면 주말에는 무료니까 웬만해선 아이들 교통비가 추가로 들지 않았다.

스톡홀름 시내버스

스톡홀름 카운티가 제법 넓은데 SL 카드 하나로 근교 여행까지 할 수 있으니 좋았다.

대중교통 요금 1회권은 비싸고 75분간 유효하지만 정기권을 사면 추가 부담 없이 자유롭게 버스,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점이 장점이었다.

난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할인율이 가장 높은 1년권을 살 것이다.

러시아 전쟁 이후 스웨덴에 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여권만 있으면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였다.

교통약자를 위해 승하차시 차체가 기울어지는 버스

스톡홀름 버스는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2대가 붙은 굴절버스가 있고 2층 버스도 있었다.

주로 독일의 만(MAN)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버스를 도입했다.

모두 저상버스인 데다 유모차나 노인 등 교통약자가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버스가 살짝 기울어졌다가 출발 전 원상태로 돌아왔다.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함인지 전면 유리가 한 개의 통유리로 돼 있는 점도 특이했다.

시내버스 전면 유리가 통유리다

기후 특성상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바퀴에 달라붙은 눈을 떼내는 장치도 있어 신기했다.

하지만 스톡홀름 시내버스는 차체가 낮고 굴절버스도 많아 특히 눈이 좀 많이 내리면 미끄러지거나 버스가 꺾이는 바람에 운행이 중단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스웨덴은 눈이 많이 와서인지 시내버스 바퀴에 들러붙은 눈을 제거하는 장치가 있었다(파란색 원)

우리나라에 천연가스 버스가 있다면 스톡홀름 버스는 음식물 쓰레기를 정제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바이오가스를 연료로 사용했다.

스톡홀름을 비롯해 린셰핑 등 40여개 도시의 시내버스가 바이오가스를 연료로 운행한다고 했다.

스톡홀름 시내버스는 바이오가스를 원료로 한다

툰넬바나(tunnelbana)라고 부르는 지하철은 내외부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한때 지하철역 투신 사고가 이어져 사회적 이슈가 되자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한국과 달리 스톡홀름 지하철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었다.

기사화가 잘 안 될 뿐 투신 사고가 없지 않은 듯했다.

SL은 매년 철로 위 사람이나 물체로 심각한 사고와 불필요한 정차가 발생해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이 시스템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승강장 카메라 영상을 분석해 철로에 떨어진 사람이나 물체를 감지해 자동으로 SL 보안센터로 경보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마치 요즘 시판되는 카메라의 동체 추적 포커스처럼 철로에 접근하는 사람이나 물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이었다.

경보를 받은 보안센터는 역으로 진입하는 기관사에게 알려 전동차를 사전에 정차할 수 있다고 했다.

17개 역에서 시범 테스트를 거쳐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진입하는 전동차를 향해 작정하고 뛰어드는 사람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스톡홀름 지하철 기관사가 역 정차 후 직접 승하차 상황을 살핀 후 출발한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기관사가 문을 열고 나와 마지막 승객이 탑승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출발하는 모습도 눈길이 갔다.

예전에 부산지하철노조가 1인 승무원 제도가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반대한 것이 기억나는데 스톡홀름 지하철은 1인 승무원 제도가 이미 정착된 것 같았다.

하지만 지하철 운전은 너무 터프했다. 특히 역에서 출발할 때 꼭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흔들리는 전동차에서 앞 좌석 승객 무릎 위에 앉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전동차 운전은 정차 지점을 정확하게 맞추는 부산교통공사 기관사들에게 좀 배워야 할 듯싶었다.

통근열차(pendeltåg)

스톡홀름 대중교통은 버스와 지하철을 중심으로 외곽 도시를 연결하는 통근열차(pendeltåg), 트램(spårvagn)과 경전철 10개 노선으로 이뤄졌다.

트램은 탑승하면 검표원이 나타나 표 검사를 한다. 새로 탄 승객만 골라서 표 검사를 하는데 기억력이 상당했다.

버스나 지하철은 SL 직원들이 버스 정류소나 지하철 매표소 등에서 불시에 표 검사를 하는데 부정탑승으로 걸리면 1천490크로나(18만원가량)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일전에 나 뒤에 바짝 붙어서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한 사람은 봤는데 지금껏 한 번도 불시 검사에서 적발된 사람은 못 봤다.

스톡홀름 지하철과 트램

2023년 봄학기 후 SL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스톡홀름 카운티 내 2005~2011년생들이 여름방학 기간인 6월 5일부터 8월 27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무료여행 티켓이었다.

SL앱이나 SL카드에 코드를 입력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12~18세 청소년들이 방학 동안 교통비 걱정 없이 마음껏 놀러 다니라는 일종의 교통복지 서비스였다.


전 세계 60개 도시의 대중교통을 분석한 Urban Mobility Readiness Index 2022에 따르면 스톡홀름의 대중교통은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스톡홀름은 대중교통 이용 승객 비율, 전기자동차 비율, 기반 시설, 문제해결 능력, 역과 정류장의 위치, 대중교통의 효율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연결수단이 많은 밀집된 대중교통 시스템, 대중교통과 자전거 네트워크 확장 계획은 큰 찬사를 받았다고 했다. 다만 자동차 이용자가 많아 도심 내 자동차 진입이나 운행을 더 어렵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스톡홀름의 대중교통 통근자 비율은 38%로, 오슬로와 헬싱키 34%, 코펜하겐 20% 등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높다는 분석 결과도 있었다.


상반된 평가도 나왔다.

그린피스가 유럽 30개 국가와 수도의 대중교통 가격과 편의성을 평가해 2023년 발표한 결과를 보면 스웨덴은 17위, 스톡홀름은 25위에 그쳤다.

스톡홀름 대중교통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인데 그린피스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처럼 하루 3유로 미만의 저렴한 티켓 도입으로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룩셈부르크와 몰타는 국내 대중교통이 무료라고 했다, 이런 나라가 있다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스톡홀름에서 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트램, 지하철, 기차를 타는 사람들보다 2만 배 이상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기후위기의 시계 초침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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