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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20. 2023

대중교통에서 와인 한잔, 가능할까

상상해 보자.

퇴근 후 대중교통수단 내에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귀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스웨덴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


2021년 스톡홀름에서 흥미로운 선행 연구(파일럿 테스트)가 있었다.

스톡홀름의 대중교통수단인 셔틀 보트(pendelbåt)에서 알코올 서비스를 한 것이었다.

당시 Strömkajen – Vaxholm – Rindö를 오가는 83번 라인의 셔틀 보트에서 승객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맥주와 와인을 제공했다.

통나무(stock)와 섬(holm)의 합성어인 스톡홀름은 14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졌고 도시의 30%가 수로인 곳이다.

지하철, 버스, 트램과 함께 수로와 강을 운행하는 셔틀 보트가 주요 대중교통수단이다.

셔틀 보트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아름다운 스톡홀름 시가지를 바라보는 건 정말 매력적이었을 것 같았다.

이 파일럿 테스트는 스톡홀름 의회의 교통 의원인 Kristoffer Tamsons 주도로 이뤄졌다.

Tamsons은 현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보수당 소속이다.

Tamsons은 파일럿 테스트에서 맥주, 와인 서비스는 호평을 받았다며 셔틀 보트 전 라인에서 주류 판매를 전면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출퇴근길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할 수 있는 것이 출퇴근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며 매우 감사한 일"이라며 "보트의 주류 판매 허용에 대해 스톡홀름을 더 유럽적으로 만드는 자유로운 개혁"이라고 말했다.

Tamsons은 오전 11시까지는 셔틀 보트에서 술을 팔 수 없고 점심, 오후, 저녁에만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Jens Sjöström 의원은 이 제안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일축하며 더는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보수당은 스톡홀름 대중교통 회사(SL)의 모든 셔틀 보트에서 주류를 판매하도록 일반 면허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해 아직 이 제안을 단념하지 않은 것 같다.

스톡홀름 셔틀 페리

대중교통수단인 셔틀 보트에서 술을 판매하면 안전사고 등 분명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정치인이 대중교통 내 주류 판매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사민당 의원은 이 제안에 대해 단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는데 보트 상에서 알코올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건이나 안전사고 등 여러 부작용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예외는 있겠지만 스웨덴 거리에서 취객을 잘 못 봤고 스웨덴 사람들은 대체로 젊잖게 술을 마시는 편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1인 1잔 정도로 제한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Tamsons 의원이 다른 교통수단이 아닌 셔틀 보트를 두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발트해로 이어지는 멜라렌 호수를 오가는 셔틀 보트를 탔을 때 스톡홀름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선상에서 멋진 풍경을 보며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건 무척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특히 셔틀 보트는 섬들로 이뤄진 스톡홀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교통수단이었다.

셔틀 페리 4개 라인

통근 페리(commuter ferry)라고도 부르는 셔틀 보트는 라인 80, 82, 83, 89 등 총 4개의 노선이 있었다.

스톡홀름 Strömkajen 선착장을 중심으로 동쪽, 서쪽, 북쪽으로 각각 운항했다.

80라인은 Nybroplan과 Ropsten 사이, 82라인은 Slussen과 Allmänna Gränd 사이, 83라인은 Djurgårdsfärjan, Grenadjärbryggan과 Strömkajen 사이, 89라인은 Klara Mälarstrand와 Tappström 사이를 오갔다.

셔틀 페리 내부

스톡홀름 중심인 Nybroplan에서 셔틀 보트를 타면 근대미술관과 동아시아박물관이 있는 스켑스홀멘(Skeppsholmen)과 유르고르덴으로 갈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스톡홀름 놀이동산 그뢰나룬드, 오른쪽은 쇠데르말름 북동쪽 절벽 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과 정박한 크루즈선 등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였다.

셔틀 보트에서 바라본 쇠데르말름

셔틀 보트 선착장 주변으로 지하철, 버스 등의 연계도 잘 돼 있어 교통수단으로써의 역할도 충분했다.

리딩외로 이사 온 뒤 Nybroplan이나 유르고르덴에서 80라인 셔틀 보트를 타고 집으로 오는 경로를 종종 이용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다른 교통수단을 타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볼 수 있고 크루즈나 유람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느끼는 번잠함이 없고 조용하고 안락했다.

2층 선상 좌석이 있는 셔틀 보트를 타면 주변 풍광을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셔틀 페리 2층 선상 좌석

속도도 제법 빨라 운행시간만 잘 맞춘다면 이보다 좋은 교통수단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SL 카드나 SL 앱으로 1회권 등을 사면 셔틀 보트를 탈 수 있고 버스 지하철과 연계해 무료 환승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에서 셔틀 보트가 운행하는 지역에 사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셔틀 보트를 타면서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쾌적함이었다.

과거 배를 탔을 때 기름냄새나 고약한 연기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스톡홀름 셔틀 보트에서는 전혀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부분 전기로 운행되기 때문이었다.

리딩외 방면으로 가는 셔틀 페리. 오른쪽 실자라인 크루즈선이 보인다.

SL(Storstockholms Lokaltrafik)은 2020년 여름부터 해상 교통의 50%를 재생 가능한 연료로 운행 중이며 2030년까지 모든 셔틀 보트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2023년엔 수면에서 약 50cm 떠서 운항하는 전기 호버크래프트(수중익선)를 시험 운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존 보트와 달리 적은 너울이 형성돼 해변 침식을 줄이고 이동시간 단축, 연간 40% 운영비용 감소 등의 효과를 기대했다.

2023년 테스트할 예정인 전기 호버크래프트 (사진=www.regionstockholm.seg)

스톡홀름에서 발트해로 이어지는 수로에는 정말 많은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이곳의 주요 해상로를 운행하는 Waxholmsbolaget 페리도 있다.

이 Waxholmsbolaget 페리는 스톡홀름의 Strömkajen에서 외부 군도의 Sandhamn까지 남쪽의 Landsort에서 북쪽의 Simpnäs까지 전체 군도를 아우른다고 한다.

군도에 사는 거주민들의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셈이다.

비수기에는 운행 횟수가 줄어들고 동절기에 바닷길이 얼면 쇄빙선도 운행한다.

수많은 군도로 이뤄진 스톡홀름, Waxholmsbolaget 페리 노선도

세계 어느 도시를 보더라도 스톡홀름만큼 수상 대중교통이 활성화되고 잘 갖춰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스톡홀름에 온다면 셔틀 보트로 이동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과 기억이 될 것 같다.

혹시 아는가. 선상에서 맥주나 와인 한 잔을 마시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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