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완전하게 저물고, 주변은 어둠으로 감싸져 있었다. 곳곳에 불이 켜진 교실들이 있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해가 뜨기 전까지 그 누구도 찾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에 호응하듯 켜져 있던 불들이 하나씩 꺼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더 어둠으로 건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건물에는 빛이 조금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운동장은 그저 어둠뿐이었다. 그 어둠을 가로질러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는 듯 얼굴을 구기고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가방을 멘 상태로 터벅터벅 걷는 그녀는 왼손에 5만 원권 지폐를 여러 장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쥐고 있었고, 지폐들은 힘없이 구겨졌다.
‘은민아, 선생님이 친오빠 같다고 생각해. 공부도 잘하는데 너무 안쓰러워서 그런 거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녀의 귓가에는 그녀를 시종일관 안쓰럽게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그의 목소리가 맴돌 뿐이었다. 불쌍하다며, 안타깝다며, 돈을 주고, 그녀가 나설 때는 뒤에서 혀를 차는, 독한 애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목소리였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평판을 위해, 불쌍한 아이에게 적선하는 듯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그녀를 신경 써 주었기에 그 누구도 그녀의 집안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늘 행동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고 내뱉었으며, 그 끝에는 언제나 하찮은 무언가를 보듯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몹시 싫었다. 자신을 이런 상황에 놓이게 만든, 하염없이 일을 하지만 그 무엇도 제공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매일 사업 실패를 원망하며 술을 먹고, 동생들에게 제대로 밥 한번 챙겨주지 않는 아빠가 혐오스러웠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물은 봉투에 담겨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걷는 길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점차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어떤 골목에 이르렀다. 골목을 이리저리 거닐며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제대로 문도 닫혀있지 않은, 아니 닫힐 수 없게 비틀려버린 철문 앞에 섰다.
그곳에서 크게 숨을 내쉰 후, 문을 밀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철문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냈으나, 낮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어둠 속에서 철문이 닫혔다. 철끼리 부딪히는 거친 소리와 함께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을 틈을 만들고 있었다.
“나 왔어.”
낡은 집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이리저리 어지럽혀진, 아무런 정리도 되어있지 않은 공간을 보며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했다. 들고 있던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눈에 보이는 큰 물건들을 집어 올렸다.
그것들을 한쪽으로 옮기면서, 밥 먹자는 소리를 내자 키가 아주 작은 두 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뛰어왔다. 아이들은 그녀를 보고 환호했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환호의 대상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서 놓인 봉투로 시선이 옮겨져 있었다. 봉투를 비집고 삼각김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물도 마시라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고, 온 신경을 그곳에 쏟고 있었다.
삼각김밥을 부지런히 먹고 있는 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며, 술 냄새를 풍기는, 제대로 된 옷도 갖춰 입지 않은, 아빠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가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는 한 손에 소주병을 쥐고 있었으며,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그것을 입에 다시 가져가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가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쥐었던 손에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녀는 빼앗기지 않으려 손에 더 힘을 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고개를 떨구고 눈만 치켜세워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그의 손바닥뿐이었다.
“뭘 쳐다봐, 썅년아. 너만 아니었으면 이따위로 살지도 않았어.”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를 밀어버렸고, 그녀는 제자리에 앉아 몸을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발을 들어 마치 그녀를 차버릴 것 같은 행동을 취했고, 그녀는 양팔을 들어 막으려 했다. 그러나 시늉만 몇 차례 할 뿐, 욕설만 내뱉고 비틀거리며 슬리퍼를 신었고,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녀가 온갖 혐오, 분노를 표현한 얼굴로, 눈물이 맺혀있는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도 동생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맨손으로 음식을 파헤치며 입에 넣기 바빠 보일 뿐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집 밖으로 빠져나간 자취를 따라갔던 그 시선은 조금씩 음식을 먹고 있던 동생들에게 향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이 되어버린 그녀는 동생들을 제대로 바라보았고,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처음 그녀를 맞이해 주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흐릿해진 얼굴로 음식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바라보기엔 그 아이들은 입도 없으면서 음식을 맨손에 쥐고 입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구겨 넣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누군가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