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by 감상자

누군가의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로, 웅성거림이 전혀 잦아들지 않는 교실이었다. 저마다의 자리에는 각자의 소지품이 놓여있었지만 유독 그 자리만은 그 누구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완전하게 무관심 속에서 홀로 독자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듯한 상태였다.


지금쯤이면 누군가 교실로 들어와 모두를 자리에 앉힌 뒤 수업 준비를 시켜야 할 것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웅성거림이 계속되는 교실은 큰 소리는 없었지만 그 산만함이 독립된 그 책상을 왠지 더 처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책상을 한번 본 뒤 원래 자신의 일이었다는 듯 들고 있던 펜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펼쳐놓은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거침없이 그 안의 숫자들에 표시를 했다. 그 흐름은 계속해서 지속될 것 같았지만 미간에 힘을 잔뜩 주는 그녀의 표정과 함께 멈추게 됐다.


그때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로 진동이 느껴졌다. 펜을 내려놓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른손으로 슬쩍 꺼낸 휴대폰 액정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고, 쥐고 있던 손을 살짝 돌리자 화면이 켜졌다. 화면에는 누군가에게 온 메시지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어 잠금을 해제했다. 메시지를 보낸 것은 위선자라고 적힌 인물이었다.


‘교무실로’


아주 짧고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녀가 움직일 때, 의자를 뒤로 최대한 젖히고 몸을 반쯤 기댄 이만 관심을 보인 것 같았다. 그는 책상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었고,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창밖을 보던 시야는 일순간 그녀에게 다다랐지만 그녀가 복도를 가로질러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복도를 걸을 때, 다른 교실들에서도 약간의 소음들은 있었다. 그녀가 있던 교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들의 웅성거림은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소음과 고요함을 뒤로 아무런 표정도 갖지 않은 상태로,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듯 터벅터벅 걸었다.


교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누군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가 온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앞에 있는 남자, 여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부로 보였으며, 목소리 어딘가에 액체가 고여있는 듯했다. 자세한 내용은 들을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그저 빠르게 자신을 찾은 용건, 그것만 알고 싶을 뿐이었다.


“선생님. 저 왔는데요.”


그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는 몸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 그녀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가짜로 만들어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들고 있던 하얀색 꽃을 건넸다.


“어, 그래 반장. 오늘 조회는 조금 늦어질 것 같으니까, 애들 조금만 조용히 시키면서 자습하라고 해. 휴대폰은 걷어 놓고, 조회 때 제대로 말해줄게. 그리고 이 꽃은 음. 1번 학생 자리에 놔줄래?”


간단하게 포장이 된 하얀색 꽃이 왠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번호로만 불리는 그 애처럼 이 꽃도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불릴 것 같았다.


“강상기요”


딱히 정정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별로 대단한 용건도 아닌데 굳이 교무실까지 부른 것에 대한 나름의 반항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는 왼손을 뻗어 그녀의 오른팔을 살짝 잡았다. 일순간 그녀의 표정은 변했다. 분명 대단한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소름 끼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어 벗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짧게 떨어뜨린 후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교무실에서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을 위치 정도가 됐을 때, 마치 더러운 것이 몸에 닿았다는 듯 왼팔로 자신의 오른팔을 털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일그러진 표정이었지만 차츰 이전의 차가운 느낌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사이 교실에 다다랐다. 그녀는 들고 있던 꽃을 홀로 어떤 공간에 있던 그 책상에 올려두고 교탁 앞에 섰다.


“오늘 조회 조금 늦는다니까, 다들 휴대폰 내.”


그녀가 짧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았고, 웅성거림도 여전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교무실에서 맞이했던 그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는 교탁 앞에 섰고, 목을 약간 가다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반장, 휴대폰은 조회 끝나면 교무실로 가져오고, 너희들에게 오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어떤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고 퉁명스러웠고 아무런 관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 남들에게 보일 모습에만 집중하는, 그저 연기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같은 반 친구였던 1번 학생이 오늘 새벽,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장례절차를 크게 진행할 생각이 없다고 하시니, 애도의 마음을 보내는 걸로 마무리하자. 다들 고3이라 민감한 시기라 배려해 주신 것 같으니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 음, 1번 학생은 아무래도 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비관해서 그런 것 같은데, 너희들도 안 좋은 마음이 들 때, 언제라도 선생님을 찾아오도록. 조회 짧게 마친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교실을 빠르게 빠져나갔고, 그녀는 아이들의 휴대폰을 모아 그 뒤를 따라나섰다. 일순간 교실은 정적이 생겼지만 아주 잠깐이었을 뿐, 아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때 누군가 낸 목소리가 다른 이들의 소리보다 조금 더 컸다.


“아 귀찮네, 야 2번. 이리 와봐.”


그의 말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안경을 쓰고, 체구가 작은 학생이 재빠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고개를 푹 숙인 뒤 꼼지락 거리는 자신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오른 주먹을 뻗어 그의 왼쪽 팔을 때렸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것을 받아내는 당사자는 몸을 휘청거렸다. 그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있는 듯했다. 그는 알겠다고 짧게 대답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에 앉으려 할 때, 누군가 그의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는 구석이 원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처박혔고,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에 몸을 앉히려 하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발버둥이 이어졌고, 하얀색 꽃이 놓여있던 책상에까지 손이 닿았다.


그저 그 책상을 건드리기만 했을 뿐이지만, 휘청거렸고, 하얀색 꽃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는 결국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찢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교실은 잠깐의 정적 뒤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휴 저거도 병신이네. 그나마 헤딩은 안 하네.”


그 소리에 바닥에서 주변을 돌아보던 그의 시야 속 아이들은 어느 순간 하나 둘 얼굴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누구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흐릿해졌고, 웃고 있는 그들의 입만 보였다. 그들은 얼굴 없이 입만 시커멓게 존재했고, 그를 비웃고 있었다.


“적당히 해 황철홍. 김윤수 너도 의자 챙겨서 빨리 자리에 앉아. 금방 수업 시작이야.”


어느새 교무실을 다녀온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고, 퉁명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그는 그 소리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분명 고개를 숙이고 걸었음에도, 바닥에 떨어진 꽃을 보았을 것임에도 그저 걸었고, 살짝 밟고 지나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또, 누군가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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