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by 별작가

어제 제주언니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다. 나는 아침 일곱 시가 넘어서야 숙취로 힘든 몸을 일으켰다.

“해리 씨, 괜찮아요? 난 머리가 좀 아프네요. 어제 기분 좋다고 너무 마셨나 봐요.”

“네, 저도 머리가 살짝 아파요. 그래도 걷다 보면 금방 괜찮아지겠죠. 제가 아침 살게요. 우리 좀 걷다가 빵집 나오면 거기서 아침 먹어요.”


한국 사람들은 서로 밥을 사주며 정을 나눈다. 어제 기분이 좋았던 나는 시원하게 저녁 밥값을 쐈고, 그게 고마웠던 제주언니는 아침 식사를 사는 걸로 화답했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마지막 순례길에 일찍 나섰고, 숙소에는 나와 유림이, 그리고 제주언니가 유일했다.

‘좋아! 천천히 우리 속도대로 가는 거야.’

마지막 걷는 길을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걸음을 진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제주언니도, 유림이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걷는 길이 갑자기 쉬워질 리가 없지만, 아쉬움 때문인지 평소보다 덜 힘든 느낌이 들었다. 걷다가 아침식사도 하고, 걷다가 마주치는 풍경들에 감동하며 사진도 찍었다. 예쁜 카페를 만나게 되면 거기서 맥주를 나눠 마시며 꿀 같은 휴식도 가졌다. 그렇게 또 걷다 보니 무언가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서로 대화가 줄어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줄어든 대화와 줄어드는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를 아쉬워하며 마지막 순례길을 조용히 걸었다.


제주언니와 함께 걷는 마지막 순례길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던 이 곳이 그립다.


어느새 산티아고 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의 숫자가 한자리가 되고 5km, 3km가 되자, 이제 산티아고 대성당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콩닥 거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서자 표지석이나 순례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걷고 있는 한 곳,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많은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대성당 바로 근처까지 오자 순례자와 관광객이 뒤섞이며 엄청난 인파가 형성되었고, 우린 그 사이를 정신없이 뚫고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건물 사이사이의 골목길을 빠르게 걸어가며, 유림이와 제주언니에게 멀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금방이라도 인파에 휩쓸려, 서로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앞서 걷는 유림이를 따라잡으려고 다리에 힘을 줬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시원하게 뻥 트인 광장이 나왔다. 그리고 산티아고 대성당이 내 눈앞에 있었다.


‘와! 드디어 도착했다. 이걸 보기 위해 보름동안 걸어왔구나.’

그런데, 감격의 눈물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한 것과는 반대로 우리 둘 다 너무 덤덤했다. 아니, 그냥 멍해졌던 것 같다. 어떤 드라마틱한 감정이 확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냥 ‘아, 성당은 멋지네. 내가 이 걸 보려고 이 고생을 하며 걸었던 거구나.’하며, 약간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이런 느낌이 유림이에게 전해지면 유림이가 실망스러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유림이, 제주언니와 함께 일부러 더 크게 환호하며 열심히 인증샷을 남겼다.


“유림아~ 우리가 해냈어! 유림아~ 너무 수고 많았어. 우리 딸, 진짜 잘 걸었어.”

나는 유림이를 끌어안으며 진심을 전했다.

그 순간, 성당을 보면서 허무함을 느꼈던 내가,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수고했다고 말하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대성당을 보게 돼서가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걸은 이 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사실이 확 느껴지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책 맡게 계속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유림이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계속 웃다가 울다가 했다.

“엄마, 울어? 아, 엄마는 정말…….”

유림이는 내가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줄 알고, ‘또 저 울보엄마 눈물 터졌네.’ 정도로 생각한 듯한 반응이었다. 유림이도 아주 조금은 감격스러워하는 듯 보였는데, 나와는 달리 이제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동한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시크한 반응의 사춘기 딸이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 믿고 싶다.

제주언니와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지금 이 순간을 기념했고, 그 이후에는 광장 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대성당과 많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많은 순례자들이 대성당을 바라보며 서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기도를 올리는 듯한 사람도 있었고, 가만히 앉아서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아예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서 이 순간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날,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지금 여기 산티아고에 함께 모여서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우린 모두 행복하고 싶고,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행복이 느껴지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또렷이 박재되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입성.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순례자 사무실이 있다고 했다. 거기에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제출하면, 그동안 받은 쎄요(순례길 도장)를 확인하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발행해 준다. 제주언니와 우린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서 접수를 하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받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우린 크레덴시알을 제출한 후 꽤 오랜 시간 기다려서야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증명서를 발행해 주는 직원이 우리 이름을 불렀다. 직원은 내 크레덴시알을 돌려주며 마지막 페이지에 산티아고 대성당 쎄요가 찍힌 걸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당신의 마지막 도장입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끝났다.

산티아고에 걸어서 도착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무작정 시작한 길. 끝나고 나니 딸과 함께 걸었던 모든 길 위에 이미 산티아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린 보름동안 290km 를 걸었다는 완주증명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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