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순례길의 첫날이다. 유림이가 걷는 걸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무게가 적게 나가는 것들 위주로 배낭을 꾸려 주었다. 그 덕에 내 배낭에는 우산 두 개, 우비 두 벌, 침낭라이너 두 개 등... 무게가 좀 있는 물건들이 들어앉게 되었다. 우린 3일간 머물렀던 포르투의 호스텔에서조식을 든든하게 먹은 후 출발했다.
포르투의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7월 말의 여름인데 기온이 20~26도 정도에다 습도도 높지 않아 쾌적했다. 강렬한 태양만 피할 수 있다면 정말 걷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서 챙 넓은 모자와 얇은 긴팔 티셔츠에 레깅스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가렸더니,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도 좋고 바람은 시원하게 통풍이 돼서 만족스러웠다.
까미노(순례길) 첫날이라 적응 차원에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마토지뉴스(페라피타)에 있는 숙소까지 약 15km 정도만 걷기로 했다. 하지만, 첫날은 포르투의 도심지에서 해변지역까지 빠져나오는 길이 대부분인 여정이었다. 그렇다 보니 포르투갈 특유의 동글동글한 돌멩이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길을 번갈아 걷느라 발바닥도 아프고, 지나는 자동차들을 신경 쓰느라 빨리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구간을 점프(교통수단을 이용해 다음 걷기 시작할 위치로 이동하는 것)해서 해안길부터 걷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아니, 나는 이 순례길을 시작하며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점프하지 않는다.(시작했으면 끝까지 걸어야지!)
둘째! 힘들어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는다.(온전히 내 다리로 걸어서 산티아고에 입성하겠어!)
셋째! 동키서비스(다음 숙소까지 배낭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내 배낭의 무게는 내가 견뎌내야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 서비스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 자기의 건강상태나 가능시간 등의 상태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나는 그저 해낼 수 있다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와 걸음으로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었다. 유림이에게 처음부터 이 원칙을 설명한 건 아니지만, 걸으면서 천천히 설명을 했고 유림이의 동의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유림이에게는 원칙보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했다.
“엄마, 우리 얼마나 걸었어?”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엄마, 좀 쉬었다 가면 안 돼?”
십분 전에 쉬었는데 또?
“엄마, 나 발 아픈데 숙소까지 아직도 멀었어?”
첫날이라 유림이가 많이 힘들어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어했다.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한 지 2시간쯤 되었을 때, 우린 한번 더 횡단보도 건너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엄마, 나 어깨가 너무 아파.”
배낭 무게 때문인지 어깨가 아프다고 하기에 유림이 배낭에서 짐을 몇 개 빼고 그 자리에 옷이나 수건 등을 넣어 배낭 무게를 최대한 줄여주었다. 많이 걸어본 적 없던 아이가 갑자기 걸으려니 힘들 거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점점 무거워지는 내 배낭무게에 나도 지쳐갔다. 하지만 그때,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생각났다. 유림이도 씩씩하게 이끌어주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힘들 때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용기를 얻길 바란다.
“유림이가 많이 안 걷다가 갑자기 많이 걸으니 당연히 힘들 거야. 하지만 어차피 우리 걷기로 결정해서 이 길 한복판에 있는 거고, 숙소까지는 가야 쉴 수 있는 거니까 힘내서 걸어보자.”
“응. 알았어. 엄마 배낭만 너무 무거운 거 아냐? 걷다가 무거우면 내 배낭에 좀 더 넣어줘도 돼”
다시 힘이 났다. 나는 엄마니까, 내 배낭이 더 무거워도 괜찮다. 나는 엄마니까, 내가 힘든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엄마니까, 딸아이보다 몇 발자국 앞서 걸으며 지치지 않게 이끌어줬다. 하지만, 나도 배낭의 무게에 눌린 어깨가 아팠다. 사실 나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지치는 건 똑같으니 네가 좀 앞서 걸으라고 투정 부리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걷는 이 길은 엄마에게나 딸에게나 똑같이 힘들다. 엄마는 딸을 위해 힘든 내색을 안 하고, 딸은 엄마를 위해 힘들어도 버텨낸다. 그렇게 까미노의 첫걸음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포르투에서 해안길로 걸어가는 중 만난 고양이. 우린 걷는 동안 고양이를 참 많이 만났다. 유림이는 고양이와 만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눴다.
도심을 빠져나와 해안길로 들어서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포르투갈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비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모를 끝없이 파란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눈뜨기도 힘들 정도로 밝은 태양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예약해 둔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위치상 여기가 맞는데, 또 간판이 안 보인다. 한국의 휘황찬란한 간판들에 익숙해져서인지 구석에 박혀있는 작은 간판들에 당최 적응이 안 된다. 숙소 입구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찻길 건너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를 보시고는 급하게 손짓하며 다가왔다. 포르투갈어로 말씀하셔서 다른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우리가 묵을 숙소 이름을 말하셔서 맞다고 대답했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아! 주인분이 나와 계셨구나.’ 했는데, 숙소 입구까지 데려다주시고는 마지막으로 '여기야'라는 손짓을 해주고는 홀연히 가버리셨다. 정신없어서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게 너무 죄송했다. 마음씨 좋은 천사 할아버지. 오브리가도!
도착한 숙소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 같았다. 두 분은 반갑게 인사하는 표정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분들이었다. 두 분은 영어를 전혀 못하셨는데, 할머니는 우리가 포르투갈어를 알아듣든 말든 아주 열심히 안내사항을 말씀해 주셨다. 설명을 못 알아듣는 것이 죄송해지는 분위기라 우린 연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열쇠를 보여주며 어떤 열쇠가 어떤 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열쇠인지 직접 보여주셨고, 내일 아침에 퇴실할 때는 열쇠를 그냥 식탁에 두고 나가라고 몸짓을 동원해 설명해 주셨다. 조용히 옆에 서계시던 할아버지는 딱 한마디를 하셨다.
“까미노?”
그 말은 내가 알아들었기에 그렇다고 하자, 따뜻한 손길로 내 어깨를 세 번 토닥여 주셨다. 나는 그 손길과 할아버지의 미소 지은 표정에서 '장하다!'라는 말이 느껴졌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유림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신발만 벗고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벌써 2시인데 우린 아직 점심도 못 먹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씻고 나오면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아서 힘들어하는 유림이를 겨우 달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맛집을 검색할 여유도 없었다. 더 이상 걷기 싫어하는 유림이를 위해 최대한 가까운 곳을 찾았다. 마침 케밥과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근처에 있었다. 우린 프란세지냐와 치킨너겟을 나눠먹고 나는 병맥주 두병을 해치웠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들어가니 저절로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보름동안 까미노 위에서 마신 맥주는 나에게 생명수가 되어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내일 일정을 체크하고, 휴식을 좀 취하고 나니 금세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까미노 위에 서니 먹고, 자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해진다.
“유림아, 저녁 먹으러 나가야 할 시간인데?”
“나 배 안 고파. 그리고 발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 그냥 시켜 먹으면 안 돼?”
나도 한국처럼 배달앱으로 '그냥' 시켜 먹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그냥 잘 수는 없었다. 내일도 힘내서 걸으려면 뭐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했다. 그때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케밥을 팔았던 게 생각났고 내가 혼자 나가서 케밥을 사 오기로 했다. 유림이는 방에서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케밥 두 개를 포장주문 하고는 크레덴시알을 내밀었다. 습관이 안 돼서 아까 점심때 쎄요 받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엔 쎄요가 없다는 것이다. 순례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라 그런가? 사장님이 ‘대신 사인이라도 해줄까?’라고 하길래 그럼 그거라도 해달라고 하고 크레덴시알에 사인을 받았다. 마치 연예인에게 종이를 내밀고 사인받는 기분이었다. 푸하하!
케밥이 준비되려면 5분 정도 걸린다고 계산 먼저 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계산하려고 보니 무슨 케밥 하나당 한국돈으로 거의 만원 정도 하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 비싸? 분명 포르투갈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포장된 케밥이 나왔다. 그런데 케밥을 받아보니 그 가격이 이해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케밥 포장을 열어보니, 한 개로 우리 둘이 먹고도 남을 만큼 크고 묵직했던 것이다.
‘이렇게 배워가는 거지.’
우린 다음에 또 케밥을 먹게 된다면 꼭 한 개로 나눠먹자고 약속했다.
우리의 까미노 첫날은 커다란 케밥으로 마무리하고,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지친 유림이는 금방 잠들었고, 나는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유림이가 저렇게 많이 힘들어하는데, 우리 내일 진짜 괜찮을까?’
눈을 감아도 내일 걷게 될 길 위에서 힘들어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자꾸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