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동생은 축구공을 사달라고 졸랐다.
책가방도 내가 매일 들어다 주는데 웬 축구공?
엄마도 허락을 하지 않으니 밥도 밀어내고 입만 내밀고 있다.
엄마가 보따리를 이고 나가려는데 결국 울움보를 터트린다.
엄마는 못 들는 척 벌써 골목을 빠져나가신다.
가뜩이나 흰 얼굴인 동생은 아예 얼굴색이 탈색이 되어버린다.
신발도 신지 않고 나서는 걸 간신히 붙잡아 앉혔다.
" 너. 엄마 장사 가실 때 땡깡 부리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넌 뛰지도 못하면서 무슨 축구공을 사달라고 해? 아직도 콧물 나는데 어서 들어가. 또 코피 쏟지 말고."
내게 가로막혀 결국 돌아서는데 울음 끝이 길어진다.
기철이가 내게 손짓을 한다.
왜?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눈을 꿈적인다.
" 장구형이 덕구형한테 축구공 가져오라고 했어. 그러면 축구하는데 끼워 준다고. 근데 오늘까지 안 가져오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
"언제?"
"어제 학교에서 오면서."
오늘은 일요일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앞에서는 장구라 부르고 뒤에서는 짱구라 불렀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말도 어눌했다.
용구가 형인데 장구와 영 딴판이다.
늘 말이 없고 항상 장구를 멀리서 바라봤다.
같은 진주 강가라고 학렬까지 같다며 장구네 엄마와 우리 엄마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볼 때마다 당부를 했다.
동생과는 동갑이지만 생일이 빠르니 장구가 형이라고 했고 용구는 나보다 한 살이 많으니 오빠라고 하라 했다. 한 번도 불러 본 적은 없다.
장구네 부모님은 동네에서 가장 얌전하다.
아저씨가 술을 전혀 못하셔서 인지 그 집에서는 좀처럼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장구조차도 얌전한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래도 장구는 축구를 워낙 잘해서 친구가 많았지만, 병약한 내 동생은 친구가 없었다.
담벼락에 기대앉아 들고 있는 과자라도 없으면 아이들은 동생 근처엘 오지 않았다.
한때는 심장 판막증이 결핵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으니.
오늘은 내가 있고 동생이 아파서 집에 있으니 별일이야 없겠지만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동생의 두려움도 오늘몫이 아닌 내일 것이리라.
기철이에게 라면땅 한 봉지를 들려주며 가서 장구 좀 데려 오라고 시켰다.
사흘 전부터 걸린 감기와 코피를 자주 흘려서 인지 오늘따라 더 창백한 동생에게는 내일이 벌써 와 있다.
" 너보고 축구공 왜 가져오라는 거야?"
" 장구가 우리 반 성훈이 축구공을 터트렸어. "
" 장구가 시킨 거야? 아니면 네가 먼저 그런다고 한 거야?"
" 나도 축구 같이 하자고......"
그랬다.
동생은 10살의 어린아이 일 뿐인데 왜 나는 한 살 더 먹은 엄마여야 했는지.
약을 먹여서 자라고 이불을 끌어 덮어 주면서 나는 엄마도 하루종일 속이 상할 거라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기철이 목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장구가 웃으며 왜 불렀는지 묻는다. 따라오라고 눈짓을 하며 앞서 걸었다.
골목을 벗어나면서 손목에 힘주어 장구의 팔을 콱 낚아챘다.
"엄마 아버지 집에 계시지?"
놀란 장구의 입에서 받침이 빠진 말들이 어지럽게 튀어나온다.
" 아이. 오에오에?"
어차피 서로 못 알아들을 말인지라 윗골목으로 끌다시피 데리고 갔다.
장구네 집은 윗골목으로 들어가 철망 다리 건너편에 있었다.
구름다리라고도 했지만 구멍이 뚫린 다리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장구는 순순히 따라왔다.
집에는 형인 용구가 있었지만 방 안에서 나와 보지도 않는다.
" 아줌마! 나와보세요."
장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엄마가 없다고 한다.
" 용구야! 나와 봐. 네 동생이 내 동생한테 축구공 사 오라고 했다는데. 안 사 오면 가만 두지 않는다고 했대. 어떻게 할까?"
용구는 축구공 사연을 듣고는 장구의 머리통을 후려친다.
알아듣게 말할 테니 그만 가라고 한다.
" 내일 이일로 내 동생 때리면 가만 안 둔다고 꼭 말해. 알았지."
그러마 하는 확답까지 듣고서야 나는 장구의 팔을 놓아주었다.
구름다리를 막 건너려는데 괴성과 함께 짱돌이 날아와 등에 맞았다.
뒤돌아서는데 또 하나가 발 앞에 박힌다.
어째 순순히 풀리더라.
냅다 뛰어올라 장구의 어깨를 팔꿈치로 찍어 내렸다. 엎어지는 장구의 등을 왼발로 밟고는 오른발로 찾는데 얼굴 쪽이었던가보다.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흐른다.
싸울 때 피가 나면 지는 거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발음은 아니었지만 쌍욕을 해댔다.
왼발을 떼기 전이었는데 녀석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그대로 올라서서 오른발로 관자놀이를 꽉 눌러버렸다.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동생이 녀석에게 당할 테니 말이다.
용구가 놀라서 나를 잡는다.
" 내가 혼낼게 그만해라. 이따 엄마에게 말해서 혼내 주라 할게."
" 놔! 너 네 동생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아?
모르는 거 아니지? 못 본 척하는 거지? 저 새끼가 애들 시켜서 약한 애들 괴롭히는 거 알아? "
" 알았어. 내가 혼낼게. 내려와. 제발 "
발을 떼며 한마디 했다.
" 같은 성이라고 다 같은 강 씨가 아니야.
너네는 강가야. 씨~~ 이, 강아지 강가라고!"
꽥 소리를 지르고 나는 철렁철렁 구름다리 위를 천천히, 그리고 승리자의 위엄을 갖춰 건넜다.
한 번만 더 까불기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