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이틀이 아버지의 기일이다.
아침부터 부엌은 시루에서 올라오는 김에 안갯속 같고, 방안에서는 잔 편을 만드는 엄마는 잰 손놀림으로 바쁘다.
시루 안에는 본편( 맵쌀 떡)과 찰편( 찹쌀떡) 이 익어 가고 엄마의 손 끝에서는 잡과편, 부편, 경단, 그리고 전과 조약이 만들어지고 있다.
동부 소와 녹두 소를 번갈아 넣고, 잡과편에는 곶감과 밤과 대추를 채 썰어 꼭꼭 눌러 쪄내고 조청을 발라 마무리하고, 부편, 경단은 조청을 발라 콩가루와 동부고물에 굴린다.
전은 납작하게 편 찹쌀을 구워 내서 조청을 묻혀 놓고, 조약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송편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낸다. 작아도 양반이라는 조약은 제일 위에 올라간다.
떡 만들기가 끝나면 연이어서 전 부치기에 돌입한다.
어제가 설날이었고 겨울이니 만들때 넉넉히 해놓으면 좋을 것을......
차례와 제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엄마의 마음은 하루종일 지난 일 년 동안 차려 주지 못했던 남편의 밥상을 차리는 마음이었으리라.
엄마는 제사를 준비하면서 가끔 숨소리처럼 흘러나오는 " 그저...... 그저."라는 소리와 몰아져 나오는 한숨으로 하루를 채운다.
정초라서 동네 아줌마들도 오질 않고 눌린 분위기 속에 어느새 밤이 깊어지면 제사상이 차려진다.
떡쟁반은 엄마의 내뱉지 못하는 그리움의 말들이 높이높이 쌓여있다.
훗날 내가 물었다.
뭔 이야기를 담아 쌓으셨냐고.
그저...... 니들 삼 남매 아프지 말고 우애 있게 크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젊어 다 못 드신 밥 양껏 드시고 가라고.
엄마에게 제사는 어쩌면 일 년에 한 번 아버지와 만나는 날이었다. 견우와 직녀처럼.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배달하는 것이 내 몫이다.
골목사람들 누구네도 불이 꺼지지 않는 날이다.
커다란 쟁반에 제사음식을 나눠 담아서 배달하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며 꼼꼼하게도 담아내는 엄마의 손은 무지막지하게 크다.
제일 먼저 통장집부터 간다. 식구가 제일 많은 인순이네. 다음은 아기가 있는 두 돼지네도.
옆집 벙어리 아저씨네도. 쌈질만 하는 철이네, 밉지만 경삼이와 해석이네도.
우리 골목 사람들은 우리 집 제사음식이 특식이었다.
앞집 기철엄마는 아예 가지러 온다.
다 돌고 나면 아줌마들은 빈 그릇을 들고 몰려온다.
하루종일 제사준비 하느라 힘든 엄마와 내가 쉴 틈도 없이 그때는 그 늦은 밤에 수다떠는 아줌마들이 얄미웠지만,
다 커서야 그 아줌마들이 엄청나게 고마웠다.
엄마에게서 슬픈 밤의 틈을 메꿔 주셨다는 것을......
정월 긴긴밤의 우리 아버지 제사는 어느덧 골목사람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