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 사람들. 3

미장원 아줌마 아끼꼬는 어디에.

by 날개

열두 시에 만나요 부~~ 라보~~.
신작로는 난리가 났다.
종구오빠의 술주정에 신작로 양 옆으로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고, 종구오빠의 풀어진 눈은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런 걸 모르고 내가 편도선 수술을 하고 퇴원한 동생의 아이스크림을 사러 골목에서 튀어 나간 터에 종구오빠와 딱 맞닥뜨린 것이다.
와, 이건 뭐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종구오빠와 나.
게슴츠레한 오빠의 눈깔이 나에게 멎는 순간, 나는 다 부르지 못한 콘이라는 글자를 삼켜버렸다. 꼴까닥.
엑스트라로 두어 번 영화판에서 설핏 스치듯 보았던 종구오빠는 정말 잘생겼다.
무술 영화였는데 오빠동생인 선희언니가 종점에 있는 극장에서 보여줘서 나는 오빠가 영화배우라고 생각했다.
신작로 옆으로 피해 있는 구경꾼들이 보는 상황에서는 신작로 정가운데서 만난 원수와의 만남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비틀비틀, 처벅처벅 종구오빠는 분명 내 쪽으로 오고 있다.
평소에는 몸이 날래기로 유명한 나는 얼음이 되어 있고, 누군가의 땡 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동생의 편도선에 아이스크림으로 열을 식혀야 한다면서 부라보콘을 사 오라 할 때, 나도 편도선 수술이 하고 싶다고 툭 내뱉은 말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건가.
내 앞에 다가선 종구오빠에게서 쩐내가 날 정도의 술냄새가 났다.
어른들이 맨날 술독에 빠져 산다고 하더니 방금 술독에서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려다본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흐린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은 눈물로 가득 차있는 것이 보였다.
운다.
종구오빠가.
잘생긴 어른 남자가.
영화배우인 종구오빠가.
나는 진짜 영화 찍는 건 줄로 알았다.
아끼꼬, 너네 집에 있니?
아니요.
정말 없어?
네.

종구오빠는 미장원 아줌마의 외아들이다.
종구오빠가 말하는 아끼꼬는 자기 엄마를 부르는 소리다.
평소에는 워낙 말이 없고 수줍은 오빠는 엄마를 부를 일이 없지만 술만 마시면 땡깡처럼 아끼꼬, 아끼꼬 하며 동네 아이들처럼 놀리듯이 불러댔다.
공동수도 건너편에서 미장원을 하는 아줌마는 일본여자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1남 4녀 모두 눈에 띄게 예뻤다.
아줌마의 허술하며 마무리되지 못한 발음이 일본사람이란 것을 믿게 했다.
미장원 아줌마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는 엄마에게 여러 사람들이 물어보았지만, 엄마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나도 긴가민가 했다.
비척거리는 종구 오빠 옆으로 온 선희언니가 가라는 손짓을 한다. 종구오빠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희언니뿐이다.
언니는 소아마비로 한쪽 무릎을 짚고 걸어야 해서 언니의 치맛자락은 심하게 펄럭거려 보였다.
가게 쪽으로 뛰어가던 나는 선희언니의 비명을 듣고 뒤돌아봤을 때 언니는 신작로 가운데로 굴러오고 있었다.
비척거리던 종구오빠가 주저앉아 있고 나는 뒤돌아 뛰어가서 언니를 잡았다.
선희언니는 괜찮다며 일어나 작은 소리로
"울 엄마한테 말하지 마."

언니의 큰 눈이 왜 그리 슬퍼 보였는지. 종구오빠가 술주정을 할 때마다 엄마를 대신해서 약한 몸으로 막아서고는 했으니,

종구오빠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아끼꼬만 데려오면 되는데. 왜?"

" 이놈의 자식이 또 지랄을 하고 있네. 술 처먹었으면 들어가서 자. 못 배운 놈 같으니라고. 엄마한테 아끼꼬 가 뭐꼬. 응?"
신통장아저씨의 호통에 흠칫하던 종구오빠는 고개를 푹 수그린다.
동네 미장원이어도 일본에서 온 미용사라는 소문이 나서 제법 손님이 많았던 그 미장원은 종구오빠의 술주정으로 손님들이 오기를 꺼려했다.
나중에 아줌마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빠의 친구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선희언니에게 몹쓸 짓을 했고 아이를 낳아 입양한 후부터 오빠의 주정은 끝 간 데 없다는 것을.
그래서 선희언니에게 유난스레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그날 언니가 신작로에서 굴렀던 것도 잡힌 팔을 빼려다가 제대로 서 있기 불편한 언니가 균형을 잃으면서 사달이 났다는 것을,
미장원 아줌마는 일본에서 만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본가에서 호적에 올려주지 않아서 자식들의 뿌리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 종구오빠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 모든 원망을 아끼꼬에게만 해댔다.
나는 그날 나를 내려다보며 울던 오빠의 눈이 선희언니의 슬픈 눈보다 더 슬펐다는 걸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