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 사람들. 4

결국, 은희엄마가 된 인순이 엄마.

by 날개

굵은 장맛비가 내려도 콧노래가 나온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엄마는 장사를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낮에도 엄마가 집에 있다는 안도감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몰려드는 동네 아줌마들 때문에 오롯이 엄마와 있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웃는 소리가 골목 안을 꽉 채우므로 괜히 신이 나는 날이다.
어?
빗소리에 웃음소리가 씻겨간 걸까?
골목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지레 어깨가 축 늘어진다.
집에 가까울수록 코 끝에 느껴지는 미역국의 비릿한 냄새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석유곤로 위에 들통을 올려놓고 불린 미역을 볶던 엄마의 얼굴이 비에 젖은 듯이 땀으로 흥건하다.
" 이제 왔나? 일찍 왔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난 엄마만 있으면 제일 좋았다.
왜 이렇게 미역국을 많이 끓여? 애들은 미역국 싫어하잖아.
"암말 마라. 끓일 일이 있어서 끓이는 거니. 들어가 옷 갈아입고 나와라. 인순이 아줌마 깨우지 말고."

방안은 후덥지근하다. 아랫목에 잠들어 있는 아줌마의 얼굴이 새까맣고 전보다 더 말라있는 몸이 우그러진 채 잠들어 있다.
부엌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쌀뜨물을 받는 엄마를 보며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오늘 학교에서 6.25 표어랑 글짓기상 탄 거 말하고 싶었는데, 인순이 아줌마 때문에 김이 샜다.

" 국 끓거든 아줌마네 가서 인순이 내려오라고 해라.
너는 무거워서 못 가져간다."
"왜? 누구 생일이래? 근데 저 많은 국을 다 준다고?"
"식구가 많으니까. 제 에미 입으로 들어갈 것이 남겠나 싶어서."
하긴 여덟 식구가 먹어야 하니.
갑자기 미역국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실은 엄마의 배려에 또 배알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네 식구는 먹는 양도 적었고 동생들은 입이 짧아서 반찬의 가짓수도 몇 가지 되지 않았는데, 엄마의 손은 너무 커서 김장도 한 접이나 해서 퍼 돌리고, 집에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아줌마들 모아놓고 큰 솥 가득 국수를 삶아 먹이거나 수제비를 해 먹이기도 하고. 옥수수도 두어 솥 삶아 동네 아이들에게 한 자루씩 들려주고,
그런 날이면 나는 위아래 골목을 오가며 엄마가 그릇 가지고 빨리 오시래요를 외치고 다녔다.
유난히 큰 양재기를 들고 오던 아줌마가 인순이 엄마였다.
가져다주면 될 것을 꼭 그릇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엄마의 깊은 속마음이라는 걸 내가 엄마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빈 그릇에 채워 올 것이 없는 가난함이 미안했을 테고 내가 부르러 온 것을 빌미 삼아 조금은 덜 미안해해도 되었을 테니.
펄펄 끓는 미역국을 큰 대접에 그득하게 퍼담아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자. 꾀죄죄한 아줌마는 그제야 일어나 앉는다.
퍼붓는 빗소리처럼 후룩거리며 국을 마시듯이 먹던 아줌마가 꺼이꺼이 울어댄다.
엄마는 따순물을 마셔야 한다며 부엌으로 나가고 나는 아줌마에게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 새끼는 버리고 살겠다고 꾸역거리며 먹고 있는 내가 짐승이랑 뭐가 다르다냐?"
"누굴 버렸다고요?"
" 8개월이나 되었더라고, 낳을 수가 없어서 떼려고 갔는데 안된다는 걸 사정사정해서 수술을 했어. 그 야매의사가 보여주는데 팔다리가 다 따로따로 더라."
물그릇을 들고 들어 오던 엄마의 쇳소리가 귀를 찔렀다.
" 왜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해? 뭐 자랑할 일이라고. 어서 마저 먹고 집으로 올라가. 인순이 내려 보내고."
나도 아줌마도 놀랬다.
남에게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아줌마가 집으로 가고 나자 엄마는 나를 앉혀 놓고
설명을 해 준다.
아줌마네 막내가 너무 어려서 또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그랬다며 아줌마가 한 말은 잊어버리라고 했다.
장마 탓에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그나마 쌀 한 톨이 아쉬운 아줌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쌀을 꾸러 들렸지만, 나는 아줌마의 목소리조차 진저리가 났다.
장마가 끝이 나고, 바늘 같은 햇볕에 그을린 줄 알았던 까매진 아줌마의 뱃속에는 또 다른 아이가 들어앉았다고 했다.
다음 해 봄.
아줌마의 큰딸 인순이 언니는 김포의 방앗간 집 맏며느리로 가고, 막내인 줄 알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은희였다.
은희가 태어나고 아줌마를 모두 은희 엄마라고 불렀다.
우리가 그 골목을 떠날 때까지 은희는 건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