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아! 일어나 봐라." 방 안의 공기가 선뜻하다. 늘 따뜻하기만 했던 엄마의 손이 딱딱하게 얼어있다. 외투에는 아직 밖의 찬 공기가 붙어있었다. 오소소 한 냉기는 이내 내복 속으로 전해지고 설핏 엄마의 눈이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막내는 얼마 전에 엄마가 많이 아팠을 때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데려가셨고, 남동생은 내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아침나절에 큰외삼촌과 엄마는 병원에 간다며 나가신 후에 동생과 나는 신작로에 있는 공동수도에서 물을 기르느라 오랜 시간 밖에서 떨었다. 동생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나는 물초롱으로 흘리며 쏟으며 물을 날랐고 동생은 물초롱을 지켰다. 언젠가 누군가가 우리 물을 덜어 간 적이 있었으므로...... 경아!
미국에 가서 살래?
너는 똑똑하니까 엄마도, 동생들도 모두 기억하지? 거기 가면 공부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훌륭하게 커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으니까? 미국? 거기가 어딘데. 나만 가?
그래. 동생은 아프니까 못 가고 애기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우리를 찾지 못할 테니......
엄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아직도 엄마손은 딱딱하다. 그때였다. 엄마손에서 손을 빼 다시 엄마손을 잡은 것이. 엄마가 나를 버리려고 한다고 느낀 것이, 순간 내가 큰 잘못을 한 줄 알았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벼댔다. 엄마! 나 맛있는 거 안 먹어도 되고, 공부 많이 안 해도 훌륭한 사람 될 수 있어요. 엄마말 잘 듣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동생들도 잘 보고, 밥도 잘하고, 수돗물도 많이 많이 길어다 놓을게요. 엄마 제발 나 미국에 보내지 마세요.
나는 미국이라는 데로 가야 한다는 무서움으로 줄줄 울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엉엉 울고 엄마는 잠든 동생을 깨워 옷을 입히며 보자기에 우리의 옷을 주섬주섬 쌌다. 동생도 같이 보내려나? 눈이 내렸던 것 같기도 하고 내린 눈이 안 녹은 것 같기도 한 신작로를 따라 우리 남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다.
건, 곤, 감, 리. 친부모를 찾아 프랑스에서 왔던 입양아는 결국 친부모를 찾지 못하고 잠시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사진작가 송원일 씨가 입양아( 이젠 어였한 어른 사람)의 어깨에 새긴 태극 문양을 촬영했다.
나는 한국사람이에요. 잊지 않으려고 새겼어요.
흐르는 뿌리.
송작가의 전시 중에 나는 그 작품 앞에서( 주리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 발을 뗄 수 없었다.
그 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동생 대신 나를 안고 있던 엄마의 숨소리는 나보다 더 불규칙했다. 조그만 창문으로 해가 떴는데도 엄마는 집에 가자고 하지 않았다. 우리 셋은 꼭꼭 숨어 있었다. 창문이 연탄색이 되고, 다시 환해졌어도. 나는 지금도 그 낯선 곳의 이틀을 기억할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하자 주인 할머니는 엄마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엄마는 그제야 흐느껴 울음을 토해냈다. " 자들 외숙이 찾아와서야 사연을 알았어. 아를 떼놓고 에미가 어찌 사느냐고 내가 뭐라 했다. 오죽하면 여북했겠냐만은...... 잘했네. 에미가 옳아."
할머니도 삼 남매를 데리고 혼자 이북에서 내려오셨다 했다.
" 아주머니 제가 무슨 죄가 많아서 애들 아버지 먼저 보내고 막내딸 친정에 맡기고 몸에 병까지 들어서 애들 건사도 못하고......"
언제 모였는지 한 집에 살고 있는 두 돼지 엄마들과 우영 아저씨도 울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막내가 보고 싶어서 외할머니에게 다니러 갔는데 막내가 할머니품에서 떨어지지를 않고 울기만 했다고. 새벽에 잠든 막내를 살포시 안아 보고는 십리길을 통곡하며 왔다는 엄마는 병들어 돌아온 거였다.
두어 달만에 엄마를 잊은 막내를 보고 온 엄마의 병은 마음의 병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에 우리의 소식을 들으신 외할머니가 막내를 데려 오셨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니 알아서 살아라"
우리 삼 남매를 앞에 두고서야 엄마는 웃었고, 병을 털고 일어났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처음으로 우리 삼 남매는 엄마의 웃음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