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의 양산을 한 손에 들고 핸드백과 커다란 봉지를 안고 이모가 숨 가쁘게 신작로를 올라온다. 골목에 대고 "엄마 막내이모 오셨어요." 그리고는 다다다닥 뛰어내려 가 이모의 허리춤에 매달렸다. " 잘 있었나? 경아!" 환하게 웃는 이모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모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부산에 살던 이모네가 이모부의 직장을 따라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뒤따라 온 엄마가 이모의 손에서 받아 든 봉투에는 토마토가 가득 들어있다. " 무겁게 뭐 하러 이리 많이 샀노. 애들은?" " 오늘 신서방이 쉬는 날이라서." 엄마의 서운한 표정이 잠깐 스치는 것이 보였다. 내 눈에는. 신작로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다. 엄마는 애들을 불러 모아 토마토 하나씩을 손에 쥐어 주었다. " 애들 주라고 사 온 건데......" 이모의 뽀로통한 혼잣말을 못 들은 척 엄마는 봉투가 헐거워질 때까지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골목에 들어서며 기철엄마와 골목사람들에게 이모를 소개하고 또 봉투에서 토마토를 꺼내 손에 들려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모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수박화채를 내놓았다. " 그래 이삿짐 정리는 다 했고? 제부도 별일 없으시고? 애들은 아직 낯설어하지?" 이모는 자신의 집과는 어림없는 우리 집을 둘러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는 방석까지 장롱에서 꺼내놓으며 이모를 손님처럼 대접을 했다. 시골에서 얼마 전에 작은할아버지가 족보 때문에 오셨을 때 방석을 내놓고 극진하게 대접했던 때와 같았다. 새초롬하게 앉아 화채를 떠먹던 이모가 엄마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 언니는 애들 주라고 한 관이나 사 왔는데 어째 남의 애들부터 주는 거야? 나도 집에서 우리 애들 먹일 때 조금씩 밖에 못 사 먹이는데." " 내 애들이나 마찬가진 애들이다. 내가 장사 나가면 우리 애들 잘 돌봐주신다. 여기 골목 사람들은. 지난봄에 애들 소풍 가는 날 섬에서 배가 뜨지 않아서 전날 오지 못해서 안달이 났었는데 새벽 배 타고 집에 오니 애들이 소풍 가고 없는 거라. 멀리 가지 않아서 뒤 쫓아갔지. 김밥 쌀 새가 없어서 이것저것 점심거리를 사 들고 가보니 애들이 김밥을 먹고 있더라고. 골목 사람들이 우리 애들 소풍가방을 어찌나 정성껏 사 주셨든지, 그러니 그 토마토 내가 다 먹었다 생각하고 아까워하지 마라." 이모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런 이모를 빙그레 웃으며 건너다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엄마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가족과 손님의 차이를. 그 골목 사람들 모두 가족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