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불꽃을 연주한다
인주 벌판 안개가 불꽃의 자진모리장단에 춤을 춘다
불의 장단에 찔린 붉은 상흔을 우주복으로 감춘 그녀
지휘봉으로 쇳물을 녹여 세상을 용접하며
희망의 시간을 짓는다
새벽잠을 푸르게 깨워 수천의 바람을 맞으며
서해 대교를 건너다 반백이 되었다
오래전 잃은 한쪽 날개가 덧나려 할 때
허리 곧추세워 용접 마스크를 벗으면
붉은 저녁하늘이 가슴에 들어와
휘모리장단으로 춤을 춘다
친구가 보내온 시이다.
국민학교를 다닌 우리들의 시대
같은 반은 아니었는데 9 반인 우리들에게 10반이었던 그녀는 배구를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조합을 이루게 되었는지
우리 반 영희와 옆집 살았다는 이유였다는 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9명이 한 팀이었으므로 꽤나 많은 친구들이 방과 후에 별관 뒷마당에서 그녀가 던져 주는 공을 받아쳤었다. 키가 컸던( 그 당시는 ) 나는 토스와 서브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왕언니였다.
지금도 정확한 나이를 알고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두어 살쯤 많았을 것이라고.
나는 친구들과 놀아 볼 시간이 없었으므로 유년의 기억에서 남은 것은 일반 주부들과 같은 기억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와 병약한 동생의 돌봄으로 책가방 내려놓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공동수도가로 달려가 물초롱을 대 놓고 순서를 기다리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런 내게 한 시간 정도의 일탈은 ( 대단한 일탈이었다) 그녀에게서 배구공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나도 이렇게 놀 수 있는데......
그녀에게 배운 배구는 중학교 체육선생님의 선수요청까지 받았고, 여력이 되지 않는 엄마의 거절로 고등학교 때까지 반대표에 머물렀다. 하지만 배구공을 만질 때마다 나는 늘 그녀를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하게 왕언니였다.
언니 같은 친구, 친구 같은 언니.
쌈닭이었던 나를 정의로운 똑순이로 표현했다.
그 친구가 시인이 되어 있었다.
삽교천에 시비가 서 있는 내 친구.
어느 날
내 사업장에 왔던 그녀의 눈에 용접하던 내가 보였단다.
한참을 바라만 보던 그 시간에 그녀는 울렁였다 했다.
용접 바가지를 벗으며 웃던 내 모습에서 세상을 다 가진 인간을 봤다 했다.
" 아이구! 쌤이 제자 보러 오셨어요?"
깔깔거리며 웃으면서도 잠깐 눈가에 물기가 비쳤더랬다.
그녀뿐 아니라 누구든 내가 용접을 한다 하면 자주 보이는 애매한 표정이다.
그러나 내 사업장에서 마음껏 노는 나를 아는 이들은 부러워한다. 엄청나게.
제각각인 파이프를 하나하나 용접으로 연결해서
결국 날개를 만들어 붙이면 완성된다.( 윙바디제작업체) 그러면 차주들은 날아가듯이 새로운 삶을 연다.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에 매일 출근하듯 오던 차주는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질주해 보겠다고 했다. 아마도 그즈음에 날개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제 묶였던 날개를 펼쳤다며 축하해 주던 내 친구가 시를 선물했다.
친구야!
높이를 재지 않고 날 수 있는 가벼움만으로 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