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의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5>를 읽고
"내 맘 아프지 않게~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해~~ 모든 걸 잊고~~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나의 사랑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게 나를 위해 울지 마 난 괜찮아~"
소파에 반쯤 삐딱하게 누워 X세대라면 누구나 알 법한 솔리드의 대표곡 <이 밤의 끝을 잡고>를 계속 흥얼거린다. 당시 유학파 가수로 인기를 누린 R&B의 대부 김조한과 멋짐 폭발했던 이준의 무대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긴 명절 연휴의 마지막 밤을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게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어~싶어 싶어.... 아흑... 내일 출근이구나 ㅎㅎㅎ" 그렇게 소환된 X세대의 추억.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난 80년생 임가영이다. X세대에도, MZ세대에도 포함되는 어정쩡한 낀 세대.(양심상 MZ에는 끝에 걸쳐 있어 좀 민망하긴 하지만 사전적으론 포함되니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와 Z세대 사이의 인구통계학적 집단으로 일반적으로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출생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대한민국에서 MZ세대는 대체로 군사정권 시기를 겪지 않았거나, 유년기 때 겪거나 사실상의 민주화 이후의 신세대를 의미하는 용어이며 X세대 이전의 기성세대와의 대비로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기성세대 측에서 젊은 세대를 한 데 묶느라 지나치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세대이다.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와 이전 밀레니얼 세대를 잇는 인구통계 집단이다. 일반적으로 1965년부터 1980년까지 태어난 사람들로 정의한다.
군사정권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고, 대학 입학 직전 데모가 끊겨 폭력 시위나 데모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위로는 권위를 행사하는 이른바 '꼰대' 기성세대를 모셔야 하고, 밑으로는 치고 올라오는 MZ세대의 눈치도 봐야 하는 그야말로 중간에 낀 세대인 1980년생. PC통신, ADSL, PCS, 삐삐, 스마트폰, 무선랜, 이젠 ChatGPT, AI의 흐름까지 따라가야 하는 세대이다. 나의 전 세대들이 산업화와 경제화, 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면(지금 시국을 보면 성급한 민주화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과거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있으니깐 자세한 얘긴 패스) 낀 세대들은 과연 뭘 했을까? 지금도 어딘지 모를 중간지대에서 허우적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명절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말, 교회 식당 봉사를 마치고 평소처럼 소설책을 기웃거리다 자녀 세대에 대한 불확실성, 불투명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고른 책이 정희선 작가의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5>이다. 저자는 저성장, 고물가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하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소비자들의 행동과 심리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모색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전작인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와 동일하게 '저성장', 'Z세대', '고령화'를 다시 한번 다뤘고, '기술'과 친환경' 대신 '공간'과 '유통'이라는 키워드가 자리를 차지했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건 지속되는 저성장 속에 새로운 시장을 만든 아직 죽지 않은 일본의 저력이다.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에게 여행책을 파는 법을 연구해 고객을 확장했고, 운동기구 없는 피트니스 센터가 일상을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을 소개했다.
일본인들의 해외여행 바이블이라 불리는 <지구를 걷는 법> 시리즈를 1979년부터 만들었던 출판사는 코로나19로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 위기 속에서 이 회사는 일본 국내 도시로 눈을 돌렸고, 수많은 국내 도시 가이드북과 무엇을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지역의 문화, 역사적 배경 등 일반적 여행책에서 얻기 힘든 정보를 심층적이고 상세하게 다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또 미래의 여행을 탐색하기 위한 테마 시리즈로 <무-이상한 세계를 걷는 법> 시리즈에선 '관광'과 '미스터리'의 두 관점에서 특색 있는 여행지를 소개했다.
이 회사 대박의 비밀은 관점과 타깃을 바꾼 생각의 유연함이다. 새로운 고객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서글퍼졌던 건 우리 아이들에게서 평소 느꼈던 Z세대만의 특징을 글로 보니 이제야 절절하게 와닿는 것이 아닌가? 가슴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책으로 읽으니 비로소 머리로만 이해가 가는 Z세대만의 특징말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뜻하는 코스파(Cost Performance, 가성비)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인 타이파(Time Performance, 시성비)는 '2022년 올해의 신조어'에 선정된 후 최근 일본 언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중략) Z세대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져 있으며, 취업 활동에서의 온라인 면접 또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이동 중에서도 시청할 수 있고, 배속 시청을 통해 속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병행하고 싶은 이들에게 효율적인 학습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5>/ 정희선/ 원앤원북스/ (p186~188)
아침 일찍 출근했다 늦은 저녁에 와 잠자리 대화 또는 주말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나로선 최근 온전히 아이들을 관찰할 시간이 없었는데, 연휴 내내 같이 있어보니 우리 아이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고, 정보 과잉과 시간 부족으로 선택 행위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영락없는 Z세대였다.
가끔 "딸! 오늘 저녁 메뉴 00 어때?"하고 물으면 늘 "아무거나 상관없어"라고 대답하는 딸이 그저 '배려심이 많은 아이로구나'로구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검색만 하면 차고 넘치는 정보의 바닷속에 선택의 과정이 귀찮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로 여겨질 수 있는 Z세대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선 요즘 Z세대에게 향수 편집숍인 노즈숍(nose shop)이 인기라고 한다.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시대, 이를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 900엔(약 9천 원)을 내면 1.5ml 혹은 2ml의 작은 사이즈의 향수가 랜덤으로 나온다고 한다. 소위 '향수 뽑기'라고 할 수 있는데, 젊은 세대에겐 어떤 향수가 나올지 모르는 두근거림, 작은 사이즈를 몇 번 써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적중한 것이다. 내가 젊은 시절엔 달콤한 안나수이나, 장폴고띠에, 겐조 로퍼의 수박향이 좋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고령화! 4장의 <모든 것이 늙어가는 사회> 도 인상 깊게 읽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인프라도 늙어가는 일본 사회에는 빈집이 유통되는 시스템을 갖춘 회사와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빈집을 개조해 만든 독특한 형태의 사우나, 80년 된 주거지를 개조해 만든 공유 키친, 무인역을 프런트 데스크로, 빈집을 객실로 만든 마을 전체가 호텔인 '분산형 호텔' 등등 어쩌면 몇 년 뒤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아이템일지 모른다. 내가 돈이 많다면 내 고향 충북에서도 기획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다.
나의 미래를 넘어 우리 자녀들의 미래, 지역의 미래, 더 나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걸 보면 뒤늦게 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교회에서 대규모 식당 봉사를 했는데 메뉴가 시금치 된장국이었다. 내 담당은 시금치 다듬기와 국 퍼주기였는데 500명가량의 국을 빠른 시간 안에 푸다 보니 몸 전체 세포 구석구석까지 시금치와 된장이 벤 것 같아 한동안은 어지어질 하기도 했다.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간 주일의 보통의 '한 끼'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보이지 않는 정성이 진하게 배어있다는 걸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는 세대 간의 간극은 수많은 갈등과 오해를 낳지만,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는 '진심', 이해가 안 되더라도 상대방을 생각해 보는 '관심'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 믿는다. 머리도 마음도 바쁜 하루였다. 카펫 위에 대자로 누워있는 푸딩(울 집 반려견)을 흐뭇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