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읽고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의 인격에 강한 영향을 받아 그 인격을 순수히 수용한 다음에야 하늘이나 땅의 계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정신 변화의 비밀이다.
-조지 엘리엇, 『다니엘 데론다』-
"샐리 루니는 밀레니얼 세대의 샐린저다" 1991년생 맨부커상 후보의 탄생!
2020년 영국 BBC드라마 방영 <뉴욕타임스>, <타임> 올해의 책 -전 세계 100만 부 판매
지난 한 주는 너무 추워서 책 읽기가 싫었다. 외근할 때 몸이 얼었다 녹었다를 반복하니 피로감이 더 해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연재의 장단점을 절절하게 깨닫다. 결국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고 마감을 두 시간 앞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읽길 참 잘했단 생각이다. 연재의 장점이라면 꾸준한 독서로 사유의 확장과 글 쓰기 습관을 잊지 않을 수 있고, 단점이라면 귀찮고 귀찮지만 결국엔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또다시 책을 집어든다는 거다.
35세에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고 전 세계에 100만 부가 판매된 젊은 작가의 글은 어떨까? 2011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젊은 남녀의 만남과 사랑, 방황, 성장,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다룬 소설이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성장한 두 인간이 운명적 만남을 통해 사랑을 시작하지만... 4년여의 그 시간들이 '사랑'이란 이름 아래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초조한 지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사랑이란 건, 달콤한 입맞춤도, 환상적인 잠자리도 아닌 서로 함께한 시간들을 갖가지 시행착오 속에서 이해하며 맞춰나가는 게 아닐까란 생각에 다다른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을 불가마에서 읽었는데, 유교걸인 나에게 19금 이상의 대범하고 리얼한 성묘사와 영어권의 파티문화는 안 그래도 더워서 땀이 뻘뻘 나는 날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했다. 독서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하나?? 아무리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이라지만 우리 딸이 성인이 될 때쯤에는 젊은이들의 성문화는 더욱 자유분방하려나? 그럼 안되는데.. 그럼 아들은? 아들에겐 뭐라고 해야 하나?부터 시작해....라떼는 어땠지? b와의 첫 키스부터 b가 군대 간 사이 잠깐 만난 전 남자 친구들... 잔잔했던 정신의 바다에 토네이도가 거세게 몰아쳤다. 덥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아이스방에서 정신을 가다듬다.
그리고 b와 나의 연애시절부터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본다. 주인공인 코넬과 메리앤과 어느 정도 닮은 점도 찾아냈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는 건가?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그러고 나면 삶 전체가 달라진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야. 지금 우리는 사소한 결정들로도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나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껏 넌 나한테 대체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고, 나는 내가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네. 덕분이지.
p285~286
우리가 대학 1학년 때 함께했을 때, 너 그때 외로웠어? 그녀가 묻는다. 아니 너는? 나도 아니. 가끔 좌절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외롭지는 않았어. 너랑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내 삶의 완벽한 시기 같은 거였어. 그전에는 정말로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거든.
p286
주인공인 코넬과 메리앤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스마트했던 코넬과 달리 메리앤은 늘 외톨이처럼 공부 외에는 관심이 없는듯하다. 코넬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코넬의 어머니가 메리앤의 집안일을 해줄 정도로 가난하지만 메리엔의 집은 어머니가 변호사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다. 단순히 코넬과 메리엔의 러브 라인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듯 하지만 덧없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청춘의 방황과 요소요소에 정치, 젠더, 가정폭력, 빈부의 격차, 자살 등 우리 사회의 암울한 단면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멈추고 싶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젊은 작가의 시대적 요소를 가미한 수려한 문체는 청춘남녀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2020년 1쇄 인쇄를 했으니 벌써 5년 전 첫 발간된 소설인데 그 사이 젊은 남녀의 사랑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19살로 돌아가 사랑을 할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것인가? 내 대답은 "아니...."
내 몸을 파고드는 사랑이라는 욕망 섞인 감정 속에 b와 내가 이뤄질 수 있을까 고민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불확실성. 안정적인지 못했던 집안 상황.
게임 좀 그만해라. 우리 뭐 먹을까? 어디 갈까? 여보 언제 끝나? 등등 이런 소소한 대화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저녁이 있는 지금의 삶이 더 좋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사랑의 결실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맞춰왔던 수많은 시간, 그 끝에 찾아온 안정과 평화. 물론 지금도 가끔 예외의 시간들이 있긴 하지만... 풋
이 책의 제목이 노멀 피플인데... 전혀 노멀 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들인 노멀 피플 역시 보이지 않는 그 이면에는 불안과 슬픔과 우울이 혼재하는 게 인생.
나 역시도... 노멀 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