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다

3.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by 정고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서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상처가 깊어서가 아니라,

그 상처가 내 안에서

아직 완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은 마음과

그러다 또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늘 동시에 찾아온다.


한때는 사랑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믿었다.

사람을 좋아하면 마음이 따라가고,

따라간 마음이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얼마나 쉽게 뒤틀리고,

얼마나 깊이 흔들릴 수 있는지를

몸으로 겪어버렸다.


그 경험은

내 마음 한쪽에 오래 앉아

조용한 경계처럼 자리하고 있다.


가끔은 누군가의 따뜻함이 고마우면서도

그 따뜻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

두려웠다.


온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 감정들은

달콤하면서도 아팠다.

받아들이고 싶다가도,

또다시 상처가 반복될까

마음을 움켜쥐게 되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워진 마음은

한 걸음도 쉽게 내딛지 못했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누군가와 나누는 온기가

그립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마음,

함께 웃고 싶은 순간들,

조용히 걷고 싶은 저녁길 같은 것들.


하지만 그 바람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머물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소망’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KakaoTalk_20251230_184554690_05.jpg 사진 | 오동일(with permisson)


다시 사랑한다는 건

이전의 감정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상처를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상처를 품은 채로도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믿음은 아직 작고 흔들리지만,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언젠가

조심스럽게 다시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더는

두려움에만 머물지 않는 날이

조용히 찾아올 것 같아서.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테고,

조금 더 나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지금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사랑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에게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답게 살면서

머물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는 것.


그 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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