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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Nov 23. 2024

바다가 보이는 마을


근대에 모이는 사람들


10월 초, 군산은 상쾌한 가을 내음과 더불어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득했다. 군산의 가을을 알리는 <시간여행 축제>가 개막한 시점이었다. 군산시는 매년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주제로 큰 축제를 여는데, 올해로 벌써 열두 번째 해를 맞았다. 군산의 일명 ‘시간여행 마을’을 기반으로 열리는 연례행사다.


운이 좋게도 축제 기간에 군산을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군산 시내에는 부모 손 꼭 잡은 어린아이부터 서로의 손을 포개어 잡은 노부부까지 사람들의 온기로 북적인다. 이국적인 건축물과 낮은 층고의 건물들, 군산에 들어선 어느 순간부터 도시는 백 년 전 언젠가로 돌아가 있다.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 속에서 설렘을 느끼며, 그렇게 사람들은 삼삼오오 군산의 ‘근대’에 모인다.


군산의 근대에는

“Hello, Modern - 군산 시간여행 1930’ s”

군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처음 만나게 되는 문구다. 군산시는 ‘근대역사 도시’를 표방하며 근대 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 개발에 힘쓰고 있다.


어김없이 “Hello, Modern”이 적힌 팸플릿을 들어본다. 팸플릿에는 군산에서 방문하면 좋을 명소가 가지런히 꾸려져 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여미랑(일본식 가옥 체험) 등 군산 원도심에 남은 일제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군산시가 추천하는 루트를 따라 걷는다. 어느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도시경관에 매료된다. 지극히 낭만적이고, 또 극심히 이질적인 길이다. 익숙한 곳에서 훌쩍 떠나 군산에 왔으니 낯선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이치일 텐데, 도저히 떨칠 수 없는 답답한 이질감은 어디서 온 마음인가.



2009년부터 군산시는 ‘근대 문화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여 군산 원도심의 일제 건축물을 복원, 정비하고 이곳에 우리나라의 근대 이야기를 더하였다. 일본풍 거리로 원도심을 관광자원화함과 동시에 군산의 근대사를 조망하는 방식이다. 역사를 내세운 군산시의 도시 브랜딩은 분명 성공적이다. 2013년에 대한민국 경관 대상, 이듬해에는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 관광객 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성과를 이루며 군산시의 근대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성공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군산에 ‘근대’는 도시의 정체성이자 도시를 살리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만, 누군가는 ‘군산의 근대’에 비판 섞인 질문을 던진다. 군산의 근대가 과연 누구를 향하는 시대인지 말이다.


근대도시의 출발점은 바로 식민도시에 있다. 군산은 개항장에 식민 지배를 위해 새로 건설된 전형적인 식민도시에 해당한다. 식민도시에서는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 명확한 상하관계와 그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가시화된다. 관계와 차이에 따라 공간은 이원화되고, 때로 이원화된 공간은 서로를 침범한다. 식민도시를 관통하는 기본 틀은 이중구조와 그에 따른 혼종성이다.


군산 역시 식민도시의 특징을 따른다. 식민시대의 군산, 즉 근대 군산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공간이 분리된 이원적 도시 구조의 공간이었다. 이때 현재 군산의 주요 관광지가 바로 근대 일본인 거주지로 기능한 군산 시가지다. 나누어진 공간, 그리고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섞일 수밖에 없던 미묘한 이질감이 ‘근대도시 군산’의 시작일 테다.


그렇다면 군산은 왜 군산 사람의 공간을 남기지 않았나. 일본인 거주지였던 군산 시가지가 과거 모습을 비교적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공교롭게 군산시의 ‘방치’가 한몫했다. 1900년대 중반 군산시는 도시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열악했던 조선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도시 재건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군산 시가지는 의도치 않게 방치됐고, 결과적으로 도시 정비 중에도 일본인 가옥이나 당대 일본 건축물 대다수는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빠져나가 공동화된 시가지에는 하나둘 상업시설과 관광시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군산의 근대유산은 그렇게 일본인 거주지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군산 시가지 관광화와 관련해 군산시의 관광사업이 일종의 ‘일본풍 거리’ 만들기에 불과하며, 지역민이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비판한다. 식민지의 또 다른 주체는 찾아볼 수 없는 군산의 시가지에서, 군산은 그저 식민지 수탈의 ‘근대’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군산의 근대’에 담긴 이들이 누구인지 떠올렸을 때 군산 시가지 관광화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남은 걸 가꾸어 잘살아보겠다는 도시의 걸음을 우리가 막을 순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고민했다. 군산이 근대가 아닌 또 어떤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도시인지, 군산에는 근대가 아닌 또 어떤 것이 남아있는지.



해신동으로


해신동은 해망동과 신흥동을 관할하는 군산의 행정동으로, 해망동의 “해(海)”와 신흥동의 “신(新)”을 따서 “해신동”이 되었다. 해신동 북쪽 끝부터 서쪽에 이르는 지역은 서해와 금강 하류가 만나며, 반대쪽으로는 나직한 언덕의 월명산이 자리한다.


군산 한쪽 귀퉁이 뾰족이 튀어나온 땅을 감싼 해신동은 군산의 오랜 시간과 삶을 담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 오랜 시간과 삶에 주목했다. 이제 우리는 월명산 밑자락의 신흥동 마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월명산의 말랭이를 넘어 바다가 보이는 마을까지 걸어가 보자. 산에서 출발해 바다로 향하는 마을, 이곳은 군산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공간


말랭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을 지나 뒤편으로 걸으면 작은 마을에 다다른다. 높은 지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신흥동 말랭이 마을이다. ‘말랭이’는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전라도 지역 사투리로 마을이 산봉우리 비탈길에 자리하여 ‘말랭이 마을’이라 이름 붙었다. 마을의 초입에 서서 마을을 올려다보면 이곳이 꼭 하나의 봉우리처럼 느껴진다. 산봉우리가 아니라 사람이 이루는 작은 봉우리, 군산의 말랭이는 사람의 봉우리다.


신흥동 말랭이 마을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고지대 비탈길이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말랭이 마을을 비롯하여 월명산 자락 마을은 일찍이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어 주거 기능을 모두 상실했다. 말랭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군산시는 2015년부터 고지대 불량 주거지 정비의 일환으로 신흥동 일대 주거 시설물을 매입했고, 이를 철거하는 대신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2022년 사업이 마무리된 결과, 지금의 말랭이 마을이 등장했다. 현재 이곳은 사진관, 도서관, 양조장, 예술인 레지던스 등 관광객과 예술인을 위한 문화복합 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어디선가 밀려난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었다. 도심에서 살 수 없어 지대가 높은 곳에 터를 잡아야 했던 사람들 말이다. 식민지 시기 신흥동 일대를 비롯하여 일본인 주거지가 형성된 원도심을 벗어나 이들은 산기슭 비탈길에 집을 지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그렇게 마을이 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 전쟁을 겪으며 이곳은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실향민 촌이 되었다. 말랭이 마을에는 가난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시대의 애환과 희망이 동시에 녹아있다.


마을을 둘러본다. 계단을 오르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걷는다.
북적이는 시가지를 벗어난 신흥동 귀퉁이에는 고요한 가을 뿐이다.
왜인지 한적한 마을을 조금 더 걸어본다.
뒤돌아서서 마을을 바라본다. 꼬불꼬불 우리가 오른 길. 말랭이를 넘어 계속 걸어간다.


해망동 999번지

해망굴. 1926년, 군산 시내와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한 통로로 지어졌다.


바다 해(海) , 바랄 망(望) 자를 써 ‘바다를 바라보는 마을’이라는 뜻을 품은 마을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해망동에서는 군산 내항을 내려다볼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다. 필자는 말랭이 마을을 넘어 해망동으로 향했다. 해망굴을 통해 걸어 나가면 월명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사이 또 다른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오르면 나오는 곳이 바로 해망동 999번지다.


해망동 일대 역시 6.25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정착한 피란민촌, 즉 달동네였다. 바닷가 비탈길에 자리한 고지대 마을에 고향을 떠난 이들이 모여 살았다. 2000년대, 해망동이 주거 취약 지구로 선정되며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집을 비우고 떠났다. 이후 2016년 해망동이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선정됨에 따라 해망동 내 주거시설은 모두 철거됐다. 이제 해망동에도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군산시는 사람이 떠난 해망동을 월명공원과 연계하여 자연생태 휴식처인 해망 자연마당을 조성했다.


해망 자연마당 한 켠 해망동 999번지에는 사라진 해망동 달동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꾸려져 있다. 낡은 안내판 하나와, 과거 해망동 달동네 옹벽 일부를 남겨 만들었다는 판자촌 모형. 말랭이 마을과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이곳은 아직 초라한 빈 곳으로 남아있다. 최근 해망동 일대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된 만큼, 해망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주기를 소원해 본다.


말랭이 마을과 해망동 999번지는 군산이 기존에 추구하던 역사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되,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군산을 이야기할 방안을 제시한다. 군산시가 그동안 말해온 ‘낭만의 근대’에서 한 발짝 물러난 곳에, 군산의 근현대를 살아간 또 다른 사람들이 서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군산이 그릴 이야기에 새로운 색을 덧입힌다.

그럼, 해망동을 계속 걸어본다.


낡은 안내판 하나와,
과거 해망동 달동네 옹벽 일부를 남겨 만들었다는 판자촌 모형. 아직은 초라한 공간이다.
해망동 999번지에서 바라본 군산의 바다. 탁 트인 바다와 건너편에 보이는 수산물종합센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계속해 흘러갈 물결로 군산의 삶을 짚어 본다.



사람


바다 냄새

사진 출처: 군산수산물종합센터

다시 해망굴로 돌아와 동백대교를 향해 걷다 보면 내항 앞 큰 수산시장이 보인다. 바다와 가까워지려면 이곳, 군산수산물종합센터를 지나야 한다. 해망동에 자리한 군산수산물종합센터는 군산에서 가장 큰 수산물 유통시장이자 인근 해역에서 조업한 수산물이 모이는 어시장이다. 군산의 대표 생선인 박대부터 제철을 맞은 꽃게까지 다양한 전북 지역 수산물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군산 사람들은 이곳을 ‘해망동 시장’이라 부른다. 해망동 시장에는 흘러버린 군산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군산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다.


금강과 만경강, 그리고 서해바다가 만나는 곳. 군산은 강과 서해로 둘러싸인 지역이지만 사실 그에 비해 ‘바다’ 정체성이 강한 곳은 아니다. 우선 예로부터 군산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너무 심해 큰 선박들이 정박하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특별한 방식으로 항만을 조성해야 했다. 군산 지역에서 매립공사, 간척사업, 고정 잔교 공사가 다수 진행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근대 시기 철도 교통이 발달하며 군산시가 비교적 바다에 덜 주목한 것도 영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흔히 우리가 군산을 떠올렸을 때 바다와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군산이 자꾸만 바다와 멀어진 탓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줄곧 바다와 살아왔다. 특히 해망동은 소금기 어린 군산 시민들의 삶이 담긴 공간이다. 군산 내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가운데 해망동 시장은 오랜 기간 군산 수산업의 거점으로 기능해 왔다. 군산시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군산시는 2022년부터 해신동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착수했다. 바다와 접하는 해망동 일대 도시재생을 목표로 해망동 수산물종합센터 정비, 바다정원 조성, 해산물 특화단지와 해산물 가공센터 등을 포함한 해산물 융복합 클러스터 건설 등을 골자로 한 사업이다. 군산이 항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산물이나 워터프론트 개발에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특히 군산시는 해망동 일대 군산내항을 가꾸고, 이를 기존의 근대문화 거리와 연결 지으려 하고 있다. 군산의 사람과, 군산의 시간이 연결되는 순간일 테다.


군산수산물종합센터, 해망동 시장은 항구도시로서 군산의 ‘바다’ 정체성을 살림과 동시에 군산이 더 이상 역사가 아닌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 바다가 있지만 바다의 정체성이 강하지 않은 군산에서, 해망동 시장은 여전히 군산에 바다가 있고 많은 군산 시민이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시장에는 ‘사람’이 있다.


사진 출처: 군산수산물종합센터



연결


월명

월명공원 정자.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 월명공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월명공원은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붉게 물들며, 겨울이면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공원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서해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군산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월명(月明)’이라는 이름처럼 달빛을 온전히 머금은 풍경이다. 어두운 바다 위를 수놓는 어선의 불빛과 달빛이 고루 어우러져 군산의 밤을 밝힌다.


그러나 월명공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녹지공간을 넘어선다. 이곳은 도심과 바다,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의 중심이자 군산의 다양한 이야기가 만나는 교차로이다. 공간적으로 월명산과 군산바다, 군산 도심은 모두 월명공원으로 이어진다. 신흥동과 해망동 역시 월명공원을 통로로 연결된다. 또한 공원은 군산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쉼터로, 관광객에게는 산책로나 수시탑으로 소문난 명소다. 이처럼 월명공원은 사람과 사람, 군산과 세상을 잇는 연결의 공간이다. 바다의 흔적과 오랜 사람의 흔적,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 군산이 품은 다양한 정체성, 군산만의 이야기는 월명공원에 모여 소중히 간직된다.


하루의 끝에서 만난 월명공원에는 살아있는 군산이 있다. 말랭이와 바다, 사람으로 향하는 여정. 이만 마무리한다.


해신동에서.



바다가 보이는 마을

“시민이 함께하는 자립도시 군산”

“시민이 함께하는 자립도시 군산”, 군산시가 내건 시정 목표다. 자립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군산시는 스스로 지은 근대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립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군산시는 군산 시민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비로소 자립하기 위해 군산시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건 과거의 이야기일 수도,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군산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려주자.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전한다. 군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바라며.




글·사진: <local.kit in 전북> 공간팀 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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