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의 이야기들
#첫 번째 글
서울 중심부에서도 한강이 가장 가까이 닿는 곳, 그리고 ‘서울 아파트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다. 바로 이촌동이다. 행정구역상 이촌1동과 2동으로 나뉘지만, 두 지역은 한강을 따라 형성된 하나의 주거벨트로 묶여 있다.
▶ 지표로 보는 이촌동
이촌동은 서울시 평균에 비해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노후 아파트 밀집도가 두드러지는 주거지다. 반면, 녹지 접근성이나 교통 인프라는 서울 평균 이상이며, 도심 인접성과 한강변이라는 지리적 강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2024년 기준 이촌동의 인구는 약 2만 5천 명, 평균 연령은 47.3세로 서울시 평균(43.7세)보다 높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도 21%로, 서울 전체(17.1%)를 웃돈다. 반면 1인 가구 비율은 약 29%로 서울 평균(36%)보다 낮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 단위 거주 비중이 여전히 높은, ‘정주형 중산층 주거지’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주택의 노후도는 눈에 띈다. 이촌동의 30년 이상 노후 주택 비율은 약 40~50%로 추정, 서울시 평균(26%)을 크게 상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4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이촌역을 중심으로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고, 한강공원·용산공원·국립중앙박물관 등 녹지와 문화 공간이 밀집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즉, ‘고령화된 노후 아파트촌’이면서도 ‘도심 속 한강 생활권’이라는 양면성을 함께 지닌 지역이다.
▶ 1세대 아파트의 변천사 - '맨션 시대'의 시대의 시작
이촌동은 1967년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시작된 서울 최초의 ‘계획형 아파트촌’*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층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며 근대적 주거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이후 1990년대 대거 건립된 아파트 단지(이촌우성, 강촌, 한가람 등)와 함께 서울 아파트 1세대의 축소판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서울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 중 하나인 한강맨션(1971) 준공 → 강변 조망권을 중심으로 당시 고급 아파트로 분류됨
1970~80년대: 왕궁맨션, 삼익아파트, 강촌아파트 등 등장
1990년대: 공무원 아파트 등 다수 철거, 재건축 시작
2020년대 현재: 한강맨션, 강촌, 한가람 등 재건축 추진 중, 이촌2동 우성, 코오롱, 삼익 등은 리모델링/재건축 검토 단계, 이촌동 전체적으로 10년 내 대규모 재편 가능성
이촌동의 주거사는 곧 서울 아파트의 역사다. 1967년,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시작된 이곳은 서울 최초의 계획형 아파트촌으로 불린다. 이후 1970년대 들어 한강맨션(1971)이 등장하면서 ‘맨션 시대’가 열렸다. 한강 조망권을 갖춘 이 고층 단지는 당시 서울에서 손꼽히는 고급 아파트로 꼽혔고, 뒤이어 왕궁맨션(1974), 삼익아파트(1979), 강촌아파트(1982)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1990년대에는 공무원 아파트 철거 및 재건축 바람이 불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한강맨션·강촌·한가람 등 주요 단지가 재건축 단계에 접어들었다. 2020년대 현재, 이촌2동의 우성·코오롱·삼익 등은 리모델링을 검토 중이며, 향후 10년 내 대규모 주거 구조 재편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 일본 이주민과 '서울 속 재팬타운'의 형성
역사적 배경:
1970~80년대 한강변 고급 아파트에 외국인 거주 수요 증가
일본계 대기업 주재원들이 한강맨션, 한가람 등에 집중 거주
문화적 영향:
일본 음식점, 책방, 슈퍼마켓 등 등장 (예: 니코니코 마트)
현재는 일부 상권만 유지되며 과거의 영향력은 줄어든 상태
현황:
‘서울 속 작은 재팬타운’으로 여전히 인식되는 상징적 지역
현재는 로컬과 일본계 상점이 공존하는 복합적 공간
현재는 1세대 일본 거주민의 이탈과 함께 “조용한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몇몇 상점은 여전히 운영 중
1970~80년대, 한강변의 고급 아파트 수요가 늘며 일본계 대기업 주재원들이 이촌동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한강맨션과 한가람 등에는 일본인 거주 비율이 높았고, 자연스럽게 일본식 식당, 서점, 슈퍼마켓(대표적으로 ‘니코니코 마트’) 등이 생겨났다.
현재는 1세대 일본 거주민의 이탈로 예전만큼의 활기는 없지만, 몇몇 상점과 식문화는 여전히 남아 ‘서울 속 작은 재팬타운’으로 인식된다. 로컬 상권과 일본계 상점이 공존하는 이 복합적 풍경이, 이촌동을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문화적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이촌동의 풍경은 지금, 다시 써 내려가는 중이다. 1970년대 한강을 마주보며 세워진 한강맨션은 반세기를 지나 마침내 재건축 확정을 받았다. 왕궁맨션과 삼익아파트는 여전히 보존과 변화 사이에서 저울질 중이고, 강촌아파트는 조합 결성을 마치며 새로운 도시의 윤곽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들어선 이촌우성 또한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 올라섰다.
이처럼 한 세대를 품어온 아파트들이 차례로 재편되면서, 이촌동은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주거지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서울 아파트의 첫 장을 열었던 기억과, ‘이촌’이라는 이름에 담긴 조용한 품격이 남아 있다
10년 뒤, 한강을 따라 펼쳐질 이촌동의 스카이라인은 아마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바탕에는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서의 삶을 지탱해온 시간의 층위가 고스란히 새겨질 것이다. 이촌동의 재건축은 단순한 건축의 변화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다시 한 번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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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local.kit> 장서린 에디터
#두 번째 글
한강변과 남산의 사이에 자리한 이촌동.
분주한 용산역 거리를 지나 철길을 건너면, 도시의 소음은 잦아들고 한적한 이촌동 거리가 보인다. 세월이 흘러도 이곳은 여전히 옛 정취 그대로, 서울 도심 속 가장 천천히 변해온 동네로 남아 있다.
이촌동의 시간 위를 천천히 걸어보자.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들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가게들을 마주하면 어느새 유년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치 20년 전 우리가 살던 동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정겹다.
한때 일본인 학교가 자리하며 ‘재팬타운’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골목 곳곳에 일본 가정식 식당과 일본어 옛 모습 그대로 간판이 남아있고, 길가를 걷다 보면 종종 일본어가 들려오기도 한다. 오래된 한국식 건물들과 이국적인 풍경의 조화가 매력적인 곳이다.
공무원 시장이라 불리던 이촌시장은 지금은 세월이 묻어나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발길로 활기가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이곳 주민들은 많게는 50년째 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주민들의 역사가 닿은 흔적들이 동네 곳곳에서도 자주 보인다.
새 변화를 앞두고 있는 이촌동. 오래된 시간 위에 새로운 풍경이 하나씩 천천히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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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local.kit> 에디터 김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