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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늘 Feb 11. 2024

나도 설날에 해외여행을 떠난다

구정이나 추석에 출국하는 여행객들이 많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저 사람은 좋겠다~ 뭔 상팔자냐~ 부러워했는데, 나에게도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라의 큰 명절인 설날에 중3 아들과 여행을 떠난다. 명목은 졸업여행. 이제 고등학교 가면 긴 여행은 당분간 못 간다는 명분으로 큰 일을 도모했다. 꿈꾸는 자에게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해외여행! 그것도 명절에 시댁 안 가고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디로 갈지 상상하고 티켓팅할 때까지만 꿈꾸는 듯했고, 현실은 쫄깃했다.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뒤로하고 해외로 떠나는 것이 그리 맘 편한, 몸 편한 일이 아니었다. 시댁과 시동생네 명절선물을 진작에 보내두었다. 시댁에 대한 노력봉사는 하루 전날 당겨서 하고, 친정도 한 주 전에 미리 가서 안부인사를 전했다. 게다가 자유여행이라 어디를 들릴지,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 알아봐야 했고, 함께 가는 일행과 의견을 조율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위가 뭉치고 머리는 조여오며 김이 올라온다. 어깨도 뻐근하고 승모근이 올라오는 게 온몸이 긴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명절 때 없었던 명절증후군이 행복한 여행을 떠나는 며느리에게 생긴 것이다!


명절 자유여행은 나처럼 해야 할 책무가 있는 며느리에게는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팔자 좋은 며느리겠지만, 실상은 할 일 다 하고도 생색은커녕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스스로도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안 한다는 찔림이 있었나 보다. 당당하지 않은 일을 할 때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추진력도 떨어진다. 아직 K-장녀, K-맏며느리다.


며느리일 때는 명절에 여행을 안 가는 것이 속편하겠다. 계절 좋은 5월, 10월에 공휴일도 많은데 웬 객기를 부린다고 구정을 끼고 여행을 계획했을까? 아무리 좋은 것도 남들 따라 하면 탈이 나는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하고 이쁘다. 비행기에 올랐지만 아직도 어깨가 무겁다.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나는 이번에도 무모한 도전을 한 후에야 하나를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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