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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터진마돈나 Nov 28. 2023

치앙마이가 왜 좋아요?

이상을 좇다가 현실에 직면하니 괜스레 헛웃음이 나던걸요.

그곳으로 가면 해리포터의 요술빗자루를 타듯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죠.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일탈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자뻑에 취해 있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영어도 못하고 나이도 많은 여자가 혼자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고?

오래전 발리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던 기억이 세월 속에 바래져서 좋았던 추억만 걸러진 탓에 결국 기억의 왜곡을 져왔었나 보다.

난 뭘 믿고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 살기를 장밋빛처럼 곱디곱게만 생각했을까.

자,

이제부터 나는 많은 이들이 한 달 살기로 손에 꼽는 이곳 치앙마이의 넘쳐나는 찬양들을 뒤로하고 조금은 맥 빠질 수도 있을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이 글은 까탈스러운 초보여행자의 외로운 투덜거림이 다섯 국자쯤은 얹혀진 지극히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치앙마이에서 혼밥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주 차가 지나가고 있다.

나는 마지막이 될 뻔했던 지난번 숙소에서 개미와의 혈투 끝에 결국 패배한 뒤, 에어비앤비의 도움을 받아 남은 일정을 환불받고 급하게 짐을 꾸려 지금의 숙소로 도망 나왔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첫 번째 숙소를 한 달 동안 예약하지 않았던 건, 혹여 이번 한 달 살기가 1년 살기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각기 다른 로케이션의 숙소에서도 묵어보길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추후 장기적으로 머무르게 될지도 모를 숙소를 정하기 위한 후보군을, 직접 보고 겪은 후 비교해 보겠다는 나름의 깊고도 기특한 생각이 깔려있었으나 그 개똥 같은 치밀함 덕분에 네 번의 짐을 싸고 푸르느라 허공에 대고 얼마나 많은 욕을 퍼부어 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네 번의 숙소를 거치며 나는 1차적 현타를 맞이했다.

여기서 얻은 결론 하나.

내 집만큼 편하고 깨끗한 숙소는 디지게 비싸거나 없다라는 것.


지금 묵고 있는 네 번째 숙소

개미를 피해 왔더니 개미를 잡아먹는 새끼도마뱀을 만났다.




나는 치앙마이의 수질이 안 좋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고 한국에서 샤워기 필터를 챙겨 왔다. 제일 비쌌던 첫 번째 숙소의 수질은 그런대로 양호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숙소에서는 샤워기 교체가 불가했기에 그냥저냥 묵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숙소로 온 첫째 날 나는 다시 샤워기 필터를 교체했다. 그런데 1주일도 되지 않아 거무스름하게 변해버린 필터를 본 뒤로는 경악스러워서 양치할 때도 마지막 입을 헹굴 때에는 꼭 생수를 사용하고 있다. 차라리 몰랐으면 물이 나랑 안 맞으려니 했을 일인데 괜한 투머치 정보를 얻어서는.

나는 시꺼멓게 변해버린 샤워기 필터를 눈으로 확인하고부터 사용하는 모든 물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졌다. 하물며 사 먹는 생수 물맛마저 별로라고 여겨졌으니.

이런 써글.

이것이 바로 원효대사가 말한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온다는 깨달음단편적 파행인 건가.

차라리 몰랐으면 넘어갔을 일들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하자 많은 것들이 찝찝하고 불편해졌다.

머리만 감으면 빗자루로 변하던 발리에서의 빌어먹을 수질도 아무렇지 않았던 30대 끝자락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아~~ 그리운 우리나라의 수돗물이여~~

아~~ 무지해서 차라리 행복했던 나의 젊음이여~~




내가 치앙마이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조건적인 힐링이었고, 하나는 본격적인 긴 여행에 앞선 워밍업이자 오리엔테이션이 목적이었다.

앞으로 어느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될지, 얼마의 기간을 여행할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할지 그 어떠한 것도 구체적으로 정해 놓지 않은 상태였기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것들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해서, 아주 저렴한 로컬음식부터 분위기 좋은 음식점과 카페까지 두루두루 부지런히 다녀보았고

이동수단도 제일 비싼 그랩택시부터 바이크와 썽태우, 튼튼한 나의 두 다리까지 아낌없이 이용했다.

그렇게 많이 걷고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느낀 점은, 실질적으로 생활했을 때 그동안 보고 들은 것처럼 생활비가 저렴하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였다.



2~3천 원 하는 로컬음식도 자주 먹지는 못할 터. 결국엔 한국음식이나 입에 맞는 음식을 찾다 보니 얼추 한국의 3분의 2 수준에 버금가는 금액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 커피나 과일 그 밖의 많은 것들이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한 건 사실이다. 또한 치앙마이의 싸고 다양하고 맛 좋은 커피는 커피광인 내가 베스트로 꼽을 만큼 치앙마이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저렴한 물가 뒤에 당연하듯 누리고 살던 편리성의 부재를 감수해도 될 만큼 치앙마이만의 특별함을 안타깝게도 나는 찾지 못했다.

도로 위 넘쳐나는 모터바이크 탓에 대기의 질 또한 생각만큼 좋게 느껴지지 않았고, 바다를 볼 수 없다는 것과 정돈되지 않고 의외로 더러운 길들이 많았던 것은 여행하면서 걷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2월부터 5월까지는 악명 놓은 화전(농사를 짓기 위해 산과 밭에 불을 내는 것)으로 인해 미세먼지가 매우 심각하고 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치앙마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좋은 시기는 몇 달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기간 동안은 성수기에 포함돼서 숙박비와 골프장 그린피등이 최소 20~30%는 올라가기 때문에 그마저도 썩 은 조건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 정도라면 모를까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더 이상의 체류를 고민하게 할 만큼 이곳이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공짜로 누린 수많은 편리성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현지인들의 삶에 동화되어 살아갈 자신이 없다면 그것들을 제공받기 위해 추가로 지출되는 돈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치앙마이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지나가다 나의 글을 우연히라도 읽게 된다면,

 "그럴 바에야 그냥 한국을 떠나오지 않는 게 어때?"라며 콧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국 환상이란 것은 어딜 가나 존재하기 마련이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치앙마이의 환상의 대한 오류를 3주를 지내오면서 깨닫게 되었을 뿐. 단지 그뿐이다.





내 여행의 가장 목적이 힐링이었다면 나는 과연 지금 제대로 된 힐링을 하고 있는가.

나의 대답은 "NO"

그렇다면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워밍업에는 도움이 되었는가.

나의 대답은 "YES"

나는 이곳에서 내가 원하던 힐링 대신 숙소를 옮길 때마다 생각 외의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앞으로 떠날 여행의 방향성을 잡는 것에는 꽤나 큰 도움과 깨달음을 얻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추구하는 여행과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여행의 갭이 생각보다 크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단 그것은 여행을 떠나 앞으로 내딛을 삶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벽을 직접 부딪쳐보면서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그동안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었을 뿐, 어쩌면 나는 편리하고 다채로운 도심 속 화려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나라에 살고 있었는지.

내 집이 얼마나 귀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였는지.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김 빠지게 벌써부터 알아버렸다.


혹 다음 여행지에서 또다시 생각이 바뀌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질지, 아니면 또 다른 여행지를 찾아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 할지, 아니면 모든 것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설렘과 기대감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고급리조트에서 맘껏 즐기다 오는 달콤한 허니문이 아니라면, 앞으로 내가 걸어 나갈 여행은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더욱 굳건히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 이래서 외국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 생겨난 건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치앙마이란

적당히 아름답고,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불편한 곳. 그래서 앞으로의 목적과 방향을 잡게 해 준 길라잡이 같은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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