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터진마돈나 Dec 05. 2023

그리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

치앙마이에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정처 없이 떠돌다가 카페에 들어가 첫 번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캠도 설치해 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상상 속에서나 그려왔던 마감에 임박한 작가들의 고뇌에 찬 모습을 내심 기대하면서.

그러나 현실은 홀로 껌뻑이고 있는 커서를 조금도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한 채 쓰디쓴 커피만 홀짝거리며 모기한테 물린 다리만 연신 긁적거리고 있다. 요가학원에서 명상시간만 되면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근질거리던 것처럼 한 글자 적고 다리 한번 긁고 한 글자 적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하기를 30분.

체르니 30번을 연주하듯 막힘없이 우아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버벅거리면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끝겨우 첫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주책스럽게 터져 나온 울음에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본다.

다리를 연신 물어뜯고 있는 모기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나란 사람의 존재감은 없는 듯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속 시원하게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눌러왔던 감정들을 배출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로부터 왔는지도 모를 설움, 수많은 추억들에 대한 그리움, 그르친 것들에 대한 회한들을 토해내자 의도치 않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었다.

씩씩한 척, 담대한 척하며 떠나왔건만 막상 혼자라는 시간에 놓여있자니 그동안 함께 여행했던 언니와의 수많은 시간들 또한 더욱 선명하게 짙어졌다. 그리움과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결국 떠돌던 나의 그리움은 다시 언니라는 섬에 정박해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오십 번 넘는 혼밥을 하다 보니 주위의 시선쯤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짬밥이 생겨났다.

영상을 찍으면서 카메라에 대고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도 어느새 친구처럼 자연스러워졌고 뭐를 먹지 말아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2주 차가 넘어가면서 헤매던 것들이 자리를 잡아가자 외로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민다.

특히 인파가 몰리는 토요일의 징짜이마켓이나

올드타운에서 열리는 선데이마켓, 치앙마이 최대축제인 러이끄라통 축제를 다닐 때 극에 달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느끼는 군중 속 외로움이랄까. 

멋진 광경 속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날 늦은 밤 친구로부터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어이~ 김혜영이~ 너 외로워 죽겠지?"

.......(순간 뜨끔)

"래"

"너 글 보니까 아주 외롭다고 난리더만~ 너 거기 간 거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잖아"

.......(아 씨..)

"아닌데..?"

"뭘~~ 글에 그렇다고 다 써놨으면서"

".. 다.. 보여?"

"그럼~~~ 내가 너 얼마나 버티나 했다. 그만하면 됐으니까 어여 들어와. 너 그래서 퍽이나 아르헨티나 가서 1년 살겠다"

친구는 한 밤중에 전화해서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내 맘을 헤집어 놓고 수화기 너머 한참을 웃어대고는 끊었다.

'아.. 뭔가 속내를 들킨 것 같이 찝찝하면서 진 것 같은 이 기분.. 내가 어디서 느꼈더라..?"


혼밥, 혼술의 달인이 되어가던 어느 날 훠궈집에서 혼자 먹고 있는 내 앞에 점원이 다가와 찐따인형을 앉혀 주었을 때 느끼던 그 감정. 맞다. 바로 그때 찐따가 된 것 같았던 그 기분. 이런.. 씨.

 



 

확실히 알아버렸다. 

그나마 젊었다고 느꼈던 시절, 혼자 놀러 간 발리 클럽에서 일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영국 친구에게 대시를 하던 막무가내적 용기는 막을 내렸음을.

더 이상 이곳에서 친구를 사귈 마음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내내 보고 싶은 얼굴들이 오버랩되는 걸 보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구나 느껴졌다.

과메기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동생도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받아 줄 친구 녀석도

쏘맥을 누구보다 시원하게 말아줄 그녀들도

점점 똥강아지가 되어가고 있는 언니의 밤비도.

보고 싶고 그리워졌다.


어쩌면 그리움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덧대고 덧대면서 켜켜이 쌓여가는 무게에 익숙해져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은 이미 허공에 메아리가 되어 떠돌고 있지만, 언니에 대한 그리움만은 한 칸 덧대어 조금씩 익숙해지려 한다.


자, 이제

그리운 사람 그들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이전 04화 치앙마이가 왜 좋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