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회사에서 뽑아줘야 항해사가 되지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큰 탈없이 실습을 마치고 드디어 4학년이 되었다.
해대의 꽃!
자유로움의 상징!
졸업하고 배 타면 아무래도 고생 시작이니 마지막 남은 1년을 스트레스 없이 펑펑 쉰다는 느낌이랄까.
누가 훈련 줄 사람도 없고 내가 대빵이 되는 거다.ㅋ
실습할 때 돈도 모아 놨겠다 만약 부족하면 학자금 대출 땡겨 쓰는 게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무조건 선배가 다 내야 가오가 사니까 이제 앞으로 돈 많이 벌거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후배들 먹여 살린다고 힘들었다.
특히나 정읍 지역 동문회에 4학년이 나까지 겨우 2명이었는데, 1,2학년이 14명이나 돼버리니 ㄷㄷㄷ 진짜 동문회 한번 하면 얼마여~
그런데 여학생들은 이런 4학년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남학생들은 군복무면제를 위해 어떻게든 승선을 해서 취업을 할 테지만, 여학생들은 각자도생이었기 때문이다.
3학년 실습을 마치고 승선을 하려는 친구와 안 하려는 친구들로 가려졌다.
나는 승선을 안 하고 싶다로 바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실습으로 승선의 실체를 봐서 그런지 안 하고 싶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당직이며 입출항이나 화물작업 할 때의 스트레스며 황천항해를 만났을 때의 위협감 등 돈을 괜히 많이 받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중공업 취업 준비를 했다.
2006년 당시에는 해운과 조선경기가 빅사이클을 그리는 호경기를 누리던 때였기에 중공업이 인기 있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배 탈 생각만으로 스펙을 하나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았으리 될 리가 없었다.
승선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졸업이 목전에 다가오니 급했다.
결국 육상회사 취업은 포기하고 승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련 자격증들을 겨우겨우 턱걸이로 따고 여자를 뽑아주는 해운회사들에 지원서를 냈다.
실습했던 회사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해 취업 부탁을 했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운이 좋았다.
당시 현대상선에서 실습했던 항해사 여자 동기 2명이 취업과 휴학으로 공석이었던 것이다.
보통 자사 실습생만 뽑았던 회사라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내가 뽑혔다.
그걸 두고 잠깐 이상한 소문이 돌았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너라면 잘 해낼 거라면서 축하해 주었다.
이름 있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여자 동기들 중에는 더 좋은 데로 취직된 친구도 있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취업을 못했던 친구도 있었기에 너무도 감사했다.
실습했던 회사에는 너무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는 그렇게 현대상선 항해사로 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