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회사 실습 항해사 페이는 월 30만원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내가 운 좋게 잡았던 실습 회사는 GS칼텍스에서 정제한 기름을 나르는 유조선을 운용하는 회사였다.
정확히는 2만톤짜리 석유제품운반선이었는데, 주로 여수와 인천을 오가는 선박이었다.
여수에서 용도에 맞게 정제한 석유제품을 7개의 화물창에 항공유, 경유, 휘발유, 벙커유 등으로 나눠 실은 후 인천에 운반하는 것이었다.
선원입장에서는 국내연안만 다니는 선박이라 가족들과 계속 휴대폰으로 연락이 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접안 때 나가볼 수 있어 꽤 메리트가 있었다.
물론 원양항해를 다니는 선박보다 보수가 작긴 했다. 그래도 국내연안선 중에서는 보수가 가장 좋았기 때문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거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강조되는 기름을 운반한다는 것 자체에서 나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툭하면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라고 까지 않나 ㅎㅎㅎ
우리가 없으면 진짜 우리나라에는 기름이 한 방울도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외쳐대던 산업역군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도취되었다.
매일 입출항을 반복하며 막무가내로 항해하는 어선들을 피하다 보니 항해실력이 좋아졌다.
실습 항해사였음에도 6개월 내내 연안항해가 계속되니 실력이 안 쌓일 수가 없었다.
원양항해를 나가면 바다에서 배 한 척 보기가 힘드니 외로움 싸움이 더 크지 충돌을 피하려고 선박을 조종해야 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같이 승선했던 2등 항해사님이 여자 선배셨는데, 여러모로 챙겨주고 가르쳐주신 덕분에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실습 항해사는 인턴이나 마찬가지라 선장님을 비롯한 여러 항해사님들을 보좌해야 했다.
실습 가기 전에 이쁨 받으려고 믹스커피 맛있게 타는 법과 라면 잘 끓이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 갔었는데 다행히 아주 좋아해 주셨다.
뜨거운 물을 바로 부으면 안 되고 옆으로 천천히 부어서 서서히 커피가 녹이는 게 비법이었다. 한여름에는 믹스커피를 미리 한가득 얼려놓아 냉커피로 시원하게 즐기실 수 있도록 했다.
라면은 취향을 타므로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되 항상 물어보면서 양 조절을 잘해야 했다.
정말 정성을 다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을 시키면 항상 잘 대답하고 어떻게든 해내려 했다.
애초에 실습생한테 잡일 말고 무리한 일도 안 시켰고.
작은 회사였지만 유조선이라 체계가 갖춰져 있어 운이 좋았다.
여자 실습생이라 힘쓰는 일을 안 시키기도 했다.
탱크 클리닝 같은 일에 오히려 방해만 될 수도 있는데 할 수 있다고 시켜달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실습해서 받는 돈은 월 30만원 가량이었다.
5만원은 4학년인 오빠에게 보내주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모여졌다.
나에게는 꽤 많은 돈이라 뿌듯했다.
실습이 끝난 후에는 그 돈으로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선물을 사주었다.
한 친구는 실습기간이 꽤 길어져 200만원가량의 현금을 가지고 하선했는데, 그 돈봉투를 술 먹고 다 잃어버려 친구들한테 엄청 놀림을 받았다.
다들 취업은 어디든 될 거였고 차이라면 복지가 좀 더 좋은 회사로 가냐 마냐로 나뉘기 때문에 그냥 웃고 넘길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 송출이나 페이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대학생에게는 정말 큰 일이었을 거다.
당시에는 공짜여도 제발 승선해서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돈까지 주다니 싶은 고마운 마음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직까지도 정체된 실습 페이는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다른 나라 선원들이랑 경쟁해야 하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도 간다.
여전히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저소득 국가에서는 공짜로도 배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해운회사에서는 굳이 높은 페이를 주면서 한국인을 승선시켜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 것도 같다.
한국 선원을 길러내는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지켜내야 할 것이므로 많은 고심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