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메리 Jul 11. 2023

6. 회사에서 뽑아줘야 항해사가 되지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큰 탈없이 실습을 마치고 드디어 4학년이 되었다.

해대의 꽃!

자유로움의 상징!

졸업하고 배 타면 아무래도 고생 시작이니 마지막 남은 1년을 스트레스 없이 펑펑 쉰다는 느낌이랄까.

누가 훈련 줄 사람도 없고 내가 대빵이 되는 거다.ㅋ

실습할 때 돈도 모아 놨겠다 만약 부족하면 학자금 대출 땡겨 쓰는 게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무조건 선배가 다 내야 가오가 사니까 이제 앞으로 돈 많이 벌거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후배들 먹여 살린다고 힘들었다.

특히나 정읍 지역 동문회에 4학년이 나까지 겨우 2명이었는데, 1,2학년이 14명이나 돼버리니 ㄷㄷㄷ 진짜 동문회 한번 하면 얼마여~


그런데 여학생들은 이런 4학년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남학생들은 군복무면제를 위해 어떻게든 승선을 해서 취업을 할 테지만, 여학생들은 각자도생이었기 때문이다.

3학년 실습을 마치고 승선을 하려는 친구와 안 하려는 친구들로 가려졌다.

나는 승선을 안 하고 싶다로 바뀐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실습으로 승선의 실체를 봐서 그런지 안 하고 싶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당직이며 입출항이나 화물작업 할 때의 스트레스며 황천항해를 만났을 때의 위협감 등 돈을 괜히 많이 받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중공업 취업 준비를 했다.

2006년 당시에는 해운과 조선경기가 빅사이클을 그리는 호경기를 누리던 때였기에 중공업이 인기 있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배 탈 생각만으로 스펙을 하나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았으리 될 리가 없었다.


승선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졸업이 목전에 다가오니 급했다.

결국 육상회사 취업은 포기하고 승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련 자격증들을 겨우겨우 턱걸이로 따고 여자를 뽑아주는 해운회사들에 지원서를 냈다.

실습했던 회사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해 취업 부탁을 했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운이 좋았다.

당시 현대상선에서 실습했던 항해사 여자 동기 2명이 취업과 휴학으로 공석이었던 것이다.

보통 자사 실습생만 뽑았던 회사라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내가 뽑혔다.

그걸 두고 잠깐 이상한 소문이 돌았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너라면 잘 해낼 거라면서 축하해 주었다.

이름 있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여자 동기들 중에는 더 좋은 데로 취직된 친구도 있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취업을 못했던 친구도 있었기에 너무도 감사했다.

실습했던 회사에는 너무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는 그렇게 현대상선 항해사로 일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