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회사 실습 항해사 TO 눈치 싸움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너무 오래전 이야기를 하나 싶어 걱정되지만, 전해 듣기로 요즘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3학년 회사 실습은 양쪽에게 Win-Win인 제도였다.
회사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부족한 인력을 메꾸고, 좋은 인재를 알아보고 미리 확보할 수 있으니 좋았고,
해대생들 입장에서는 실습으로 취업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가고 싶은 회사에 눈도장을 찍을 좋은 기회였다.
당시에는 성적순으로 실습 회사가 결정이 났는데, 실습 TO가 학생 수보다 많은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부족할 경우에는 분위기가 정말 싸해졌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TO가 항상 부족했다.
남자들만 모여있는 배에서 가장 약자인 실습생이 여자다?
별로 좋은 그림이 아니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승선을 마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이런저런 일을 겪기 마련이었다.
성희롱까지는 아니어도 원치 않는 남자들의 구애도 괴로움 중 하나였다.
항상 행동과 말을 조심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 없는 실습 자리를 놓고 여학생들끼리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성적이 높은 친구는 실습을 갈지 간다면 어디로 갈지로, 성적이 낮은 친구는 실습을 갈 수 있을지 말지로, 성적이 중간인 친구는 어디를 1지망으로 써야 갈 수 있을지로 다들 고민이 많이 되는 힘든 시기였다.
애초에 바다를 꿈꾸고 입학해 힘든 1,2학년 생활을 견딘 여자들이었으니 실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 같은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한 친구들은 자기가 더 배를 잘 탈 수 있고 오래 탈 거라고 말하며 자신이 실습 기회를 가져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했다.
당시엔 나도 성적이 좋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딱 봐도 체력이 안돼서 배에서 쓰러질 것 같은 친구들도 실습을 가려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실습만 다녀오고 승선은 포기할 게 뻔한 친구들도 회사 실습을 가고 싶어 했다.
너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라며 이래서 여성 항해사들의 입지가 좁은 거라며 분노를 토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건 그냥 변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말이다.
특히 자신이 승선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학교 생활 좀 잘했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 제일 오래 다니는 사람과 회사 생활 잘하는 사람과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았다.
당시에 TO가 남학생 수보다 많이 나왔다.
그래서 남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은 회사 중 그나마 가능성 있다 생각되는 회사를 1지망으로 썼다.
나름 머리를 굴렸던 그 전략이 먹혀서 실습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했을까 봐 혼자 말도 안 하고 끙끙 앓았던 기억도 난다. ㅎㅎㅎ
그런데 하필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회사 실습에 떨어져서, 서로 울면서 내가 받은 자리를 양보하느라 신파를 찍기도 했다.
그 친구가 나보다 성적이 더 높아 무난히 실습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당 해운회사에서 말을 바꿨다.
여자 실습생을 받는다고 신청은 해놓고 막상 지원하니 다시 안 받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교수님들을 비롯해 약속을 지켜달라고 사정사정을 해 겨우 우리 둘 다 회사 실습을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긴 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실습 못 가면 여자는 배탈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