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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Jul 08. 2023

3. 실습 항해사는 공짜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해외여행을 공짜로 가긴 간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실습선 타고.
아니면 회사 개인 실습으로.

학교 실습선으로는 대략 한 달 반 정도 일정으로 해외원양항해를 다녀온다.

나는 1학기 때 실습선을 타고 일본 나고야, 중국 상해,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다녀왔다.
이를 위해 처음으로 여권도 만들고 외환통장도 만들고 환전도 하고 나름 설렜다.
실습선은 상선들 기준으로 보면 작은 편이라서 롤링도 많이 하고 구역도 좁아서 4인실을 써야 하는 등 환경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기들이랑 같이 하니 좋았던 것 같다.

원양항해 출항식을 할 때는 제복을 입고 정렬해서 맨드레일(Mandrail:man+guardrail)이란 아주 볼만한 행사도 했다.
내가 배 위에서 던진 반짝이는 얇은 줄을 당시 남자친구가 육상에서 받아줬다.
그 줄이 끊길 때까지 아련하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는데 어찌 걱정이 안 되겠나.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여전히 무서운 곳이다.

당시에는 들르는 항구마다 해대 동문 선배님들이 후배들이 왔다고 환영식을 열어주셨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골프장을 대여하고 유명 가수를 불러 제대로 잔치를 벌여주었다.
시골 촌 사람인 내게는 이런데 이렇게 돈을 쓴다는 게 너무 놀랄 일이었다.
상해에서도 자카르타에서도 후한 대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배님들이 이렇게 돈을 많이 버나 싶고
나도 나중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부심이 생겼다.

나고야에서는 당시 일본 아이치엑스포가 열리는 중이었는데, 우리도 한국의 날 일정에 맞춰 한국해양대생 퍼레이드 행사를 했다.
퍼레이드 연습을 할 때는 짜증 났는데,
행사 당일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으려니 상당히 자부심이 밀려왔다.
특히 어느 재일교포가
휠체어를 탄 어머님께 어설픈 억양으로,
"어머님, 저기 보세요. 우리 한국인들입니다."
하는 말이 들려왔을 땐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또 추억이긴 한데,
승선 당시에는 힘들었던 것 같긴 하다.
승선생활관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바글바글 모여 생활하는 것도 어려웠고,
롤링이 심해 멀미도 많이 했다.
어떤 친구들은 멀미로 승선 내내 아무것도 못하기도 했고,
항해사가 아닌 기관사 친구들은 기름독이 올라 고생하기도 했다.

남학생들은 군 복무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떻게든 버티는 쪽으로 가지만,
여학생들은 이 실습으로 승선여부를 선택하기도 했다.
승선을 너무 하고 싶어 하다가도
배라는 게 현실로 다가오니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에서 여자를 항해사나 기관사로 뽑아줄 지도 미지수이므로 어쩌면 더 가능성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바다에서 항해한다고 30일,
항구 접안해서 12일을
59기 동기들과 함께 부대끼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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