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승선생활관이 뭐야?-항해사는 기숙사도 실전처럼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해대에는 해사대 학생들만 이용하는 기숙사가 따로 있었다.
승선생활관이라고 불렸는데
말 그대로 나중에 승선하면 겪게 될 것들을
미리 체화시킨다는 취지였다.
모든 게 배라고 생각하고 생활하라며
툭하면 배에서 그렇게 할 거냐며 그러면 죽는다고 난리였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무척 잘했다.
집단생활을 하고 명령에 따르고 규칙을 지키며 사는 삶.
나랑 너무 잘 맞아서 내 숨겨뒀던 외향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집안이 엄했어서 그런지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는 그곳은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 요령 있게 잘 놀았다.
공부는 안 하고... 하하하
한편 이런 생활을 못 견디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내 룸메이트가 그랬고,
정읍에서 같이 해대에 입학한 남자 동기 2명이 그랬다.
적응 못한 동기 몇몇이 휴학을 하다가 결국 자퇴를 하고 떠나갔다.
새벽같이 운동장에 집합해 운동을 했고,
저녁에는 청소하고 훈련받고 인원점검을 했다.
주말이면 위생점검에 대비해
더 빡세게 청소를 했고,
상륙을 대비한 복장점검도 했다.
부산 영도 섬에서도 더 들어간 조그만 아치섬에 있었으니,
육상 상륙이라 불러도 될 것 같긴 하다.
나는 이런 행위들을 아주 잘했다.
무슨 규정이나 규칙 같은 것들을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물어볼 정도였다.
그냥 타고난 것 같았다.
이런 나를 친한 친구는 신기해했다.
자기는 너무 힘들어서 악으로 깡으로 다니는데 넌 어떻게 그러냐고.
난 힘들어하는 그 친구가 오히려 더 신기했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드냐고...
삼시세끼 맛있는 밥에
남자선배들도 몇 명 없는 여자라고 엄청 챙겨주고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찍힐 일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훈련이나 괴롭힘 같은 것들이 짜증 나고 힘들긴 했지만 그냥 재수 없다고 욕하고 신경 꺼버리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시간이 너무 지나 다 까먹어버린 걸 수도 있고.
사실 학교 다닐 때 지키던 세세한 규정들은 좀 웃기긴 하다.
발목양말 안되고 염색머리도 안되고 경례는 어떻게 해야 하고 바지주름은 이렇게 다려야 하는 따위의 것들 말이다.
청소나 인원점검은 그렇다 쳐도 너무 세세한 규정들이 많긴 했다.
그런 게 승선에 필요하다고 갖다 붙이기엔 좀 억지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 많은 학생들을 순전히 자치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몸만 큰 철없는 성인들을 사건사고 없이 데리고 있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렇게 군대 같지만 군대는 아닌 곳에서
군대 같은 훈련과 통제를 받으며
대학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