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고 싶은 마음과 낳을 수 없는 현실
내가 꿈꾸던 가정에는 아이가 둘이 있었다. 내가 남매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적어도 둘은 낳고 싶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꼭 딸이었으면 했다. 지금 아들 하나 키우고 있으니, 나의 로망대로라면 딸 하나를 더 낳아 키우면 딱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든 임신과 육아가 나를 또 고민하게 만든다.
아들을 낳기 전, 나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그때 심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 아들을 임신했을 때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히 지냈다. 아기를 잃고 싶지 않아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몸을 사렸다. 임신 초기에 피가 비쳐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유산기가 있으니 누워있으라 했다. 그 말에 집에서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주욱 누워서 지냈다. 중기 때는 투명대검사에서 이상이 있어 양수검사도 했다. 임신 후기에는 코로나가 터졌다. 임신기간 내내 계속되는 이벤트에 맘고생이 심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기에 아주 조심조심 소중히 다뤘다. 첫애라 나도 남편도 육아가 서툴러서 더 많이 고생했다. 그리고 그때는 코로나 공포가 극에 달할 때라 육아를 주변에 도움받기 어려웠다. 잘 안 돼도 직접 모든 걸 해야 했다. 그렇게 부딪친 현실육아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2시간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애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고 내 정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랬는데도 아이가 크면서 슬슬 둘째 욕심이 났다. 남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라 어릴 때 둘이 항상 붙어서 놀았다. 그래서 터울은 2년 정도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내가 말했다. 둘째를 갖고는 싶은데 육아 때문에 무섭다. 낳고 싶은 마음이 60%, 낳고 싶지 않은 마음이 40%다. 그대가 낳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면 둘째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는 낳고 싶은 마음이 40%, 낳고 싶지 않은 마음이 60%라고 하면서 나보다 오히려 소극적으로 나왔다.
그랬다. 남편은 육아 참여도가 매우 높은 남자였다. 코로나 시국이었기에 회식도 거의 없었고, 집과 회사만 오가며 퇴근하면 적극적으로 육아를 해주는 아주 바람직한 남자였다.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둘째를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남편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의 첫째는 4번째 돌을 앞두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짧은 터울은 이미 끝났고, 나는 그 사이에 더 늙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나는 이제 둘째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했더니 남편은 이제야 뒷북처럼 왜, 하면 되지라고 한다. 우리는 둘 다 '예쁜 아이'를 하나 더 갖고 싶은 마음과 '힘든 현실판 육아 및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금전적 서포트'라는 난제 앞에 저울질을 끝내지 못했다. 끝내려는 마음 앞에 남편이 '후우'하고 불어넣은 작은 숨결은 너무나 큰 마음의 파도가 되었다.
얼마 전, 몸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혹시 둘째가 임신된 건 아닐까? 엄청 의심을 하던 때가 있었다. 마침 그때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서도 둘째 준비 중이라 말하고 약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긴가민가 계속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에 피가 비치고 생리가 터지면서 병원 가서 항생제도 지어먹었다.
"그래. 곧 여행도 가야 하는데 지금 시기에 임신이면 불편해서 안되지." 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이 아쉽다.
남편에게 "생리 시작했다. 임신 아니야. 차라리 잘됐지."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곳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둘째 임신을 하기에 적기가 언제인지, 어떻게 해야 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둘째를 정말로 원하는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하다. 고된 육아에 지치고, 점점 '일'과는 멀어지고, 앞으로 아이를 위해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돈은 줄어든다.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만한 근거들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흩어져있다. 머리로는 이제 그만 둘째 낳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했다면, 체력적으로 좀 더 건강했다면 아마도 이런 고민의 폭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나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제일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자연의 섭리에 맡겨보자 하면서도 매달 둘째인가 아닌가 의심하는 나의 모습도 참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