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 푸닥거리를 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과다복용 했던 약물의 후유증도 많이 좋아졌고 마음 상태도 비교적 쾌적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명절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점차 불안감이 올라왔다.
엄마나 언니들에게 연락이 올까 봐 휴대폰을 쳐다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어차피 당장에 전화받지 않을 테지만 전화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그동안 유지했던 정신상태가 무너질 게 뻔하다 생각했다.
우선, 명절 당일에 큰언니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는 왜 이리 자극적이게 빨간색글씨로 남는 걸까?
강렬한 빨간색으로 남겨진 '부재중전화'가 전화받지 않은 나를 책망하는 듯 느껴진다.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유독 강조했던 말이 있다.
미미씨가 어떤 일을 한다 해서,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과거에 경험했던 일이라도 현재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미미씨가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르게 행동하기를 선택할 수 있어요.
같은 일이 반복될 때 같은 방법으로 회피하게 되면 같은 마음이 반복된답니다.
같은 방법으로 회피하면 결국 같은 마음이 반복된다는것.
돌연 잠적하여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내가 즐겨하는(?) 회피 방법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와 접촉하려는 대상에게서 피하고 싶으니, 나에게는 잠수와 잠적이 가장 쉽고 효율적인 선택이었으니깐.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려 했다.
부재중전화를 눌러서 다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미야, 추석 잘 보내고 있어?
응. 언니는?
우리는 엄마 모시고 사촌오빠네 갔다가 다시 엄마집으로 가는 길이야
아, 그렇구나
건강은 어때?
잘 모르겠어. 아직 많이 아픈 것 같아. 계속 불안해.
어쩌면 좋아. 도대체 뭐가 너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거야?
그냥 내가 고장 난 거지, 뭐. 아직도 다른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아.
그래그래, 엄마 걱정 하지 말고 건강 관리 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가족들을 보니깐 답답하면서도 안심된다.
답답하다는 것은 서로를 죽일 듯이 물고 뜯어도 결국 서로 곁에 남는 모습이고 안심된다는 것은 내가 자살시도를 했음에도 내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내가 없어도 그들은 괜찮아.
나는 가족들 없이 잘 살아도 괜찮아.
나는 적어도 가족들 앞에서는 많이 아픈 사람이야.
나를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
전화를 끊고 나서 끊임없이 되새겨본다.
내친김에 시집 근처에 있는 아버지 가게에도 가본다.
발걸음이 무거운데 멈출 정도는 아니다.
아버지에게 다가갈수록 머릿속에 뿌옇게 안개가 끼는 기분인데 호기심이 번개처럼 내려친다.
힘없고 돈 없는 여자들에게 돈을 미끼 삼아 첩으로 만들어놓고 그게 권력인 줄 알았던 사람
네온사인 빛나는 밤에 더 빛났던 사람
자식들한테도 개새끼 소리를 듣는 사람
그런 아버지가 궁금하다.
딸의 전화번호도, 몇 살 인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궁금하다.
나를 만들기는 했는데 키우지 않았던 아버지가 궁금하다.
어제만 해도 돈으로 사람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던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서 간병인의 부축을 받는 모양새가 궁금하다.
나를 보고 여전히 자식으로 기억해 주는지.
부모보다 먼저 죽으려고 했던 자식이라는 걸 아는지.
평생을 미워하고 저주했지만 아버지를 여전히 궁금해하는 자식이 있다는 걸 아는지.
지하에 있는 가게로 내려가는 동안 익숙한 분위기와 향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내가 자라면서 느꼈던 술집 특유의 알싸하고 꿉꿉한 향기와 은은히 습한 기운이 올라온다.
딸랑딸랑-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다.
아버지가 누워서 쪽잠을 자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여자들과 담소를 나눴던 방을 들여다본다
빨간 장미 벽지가 드리워졌던 벽에는 냉동고가 자리 잡았고 맞은편에는 종이컵과 음료수 박스 따위가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반평생 있던 공간이었는데 이제 사람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미미씨, 너무 반갑다! 추석 잘 보내고 있어?
회장님은 간병인이랑 오셔서 잠깐 앉아있다가 방금 가셨는데~ 지금 아버지댁으로 뛰어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버지를 만날 필요가 없겠다 생각 들었다.
아니, 더이상 아버지를 만나지 않아도 되겠다.
왜인지?
이유?
항상 그랬듯이 그냥 내 느낌이다.
사실 가족들은 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고, 잘 지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이라고 맺어진 사람들과 살면서 불안했고 괴로웠고 숨 쉬는 일이 버거웠는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런 '가족'과 살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라서 우리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헐뜯고 이간질하여 정치질했으니깐.
물보다 진한 피가 다시 물보다 묽어질 만큼 혈연임을 부정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던 배를 찢어버리고 싶다 하였고 자식들은 차라리 죽이지 왜 낳았냐며 자신이 나왔던 배가 아닌 부모의 마음을 갈가리 찢었다.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내 안에는 아버지의 피가 있고 엄마에 대한 애증과 그리움을 내가 막을 수 없는 나의 전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세상을 떠나려고 했다.
뭐, 우울장애 일생을 뒤돌아보고 있는 걸 보면 아시겠지만 나는 세상에 다시 남겨졌다.
다시 죽지 않으려면 나는 혼자가 되었어야만 했는데 가족들은 꽤 시원하게 나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
다시금 몰려올 가족들 생각만 해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흉통 때문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는데 가족들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이따금씩 <부재중전화>가 남겨지긴 했지만 부재중전화의 흔적을 내 휴대폰에서 지워버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얘가 그동안 가족들 사이에서 힘들었구나" 하고 나를 이해해 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반찬거리가 되어서 신나게 씹히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바라봐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병에 걸렸으니 격리하고 있는 것일까?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밀려오고 나쁜 쪽으로 생각하자면 일개 분노와 억울함이 몰려온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생각을 시작하기만 해도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밀려와서 당분간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언니와 마지막 통화에서 나를 혼자 두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는데 오열하며 발악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니.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줄 알았기에 더 잘하고 싶었던 관계였다.
우리가족의 문제는 칼로 물 베기인 줄 알았는데 내 살이 베어서 어느덧 물이 빨개져 있더랬다.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았어도 가족이란 자체만으로 사랑이라 믿었던.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날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그날의 주마등에서 비로소...
가족이 나의 삶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