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욕망의 배면이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 산야가 꽃으로 범벅이다. 아니, 페인트 통을 엎은 것처럼 온 산이 불타는 주황이다. 꽃난리가 났다. 엘에이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엔텔롭 벨리는 파피꽃 보호구역이다. 지난겨울 40년 만에 찾아온 넉넉한 강우 덕분에 드문드문 잡풀만 자라 있던 사막 산에 일제히 꽃불이 올랐다. 말 그대로 장관이다. 꽃그늘에 물 들면 사람도 꽃이 되는지, 꽃밭에는 인화조차 만발했다.
식물의 생장에는 알맞은 물과 햇살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막이라는 태생적 불리함을 안은 이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한계를 의미하고 한계는 결핍의 다른 이름이 된다. 사막에는 수분이 턱없이 부족하고 햇살은 낙타도 쓰러뜨릴 만큼 강렬하다. 이 극심한 불균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막 식물은 자구책을 쓴다. 줄기를 굵게 발달시켜 수분을 저장하거나 오히려 퇴화시켜 수분의 필요를 억제하는 것이다. 사막의 꽃들에 유난히 가시가 많은 것도 수분증발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선인장들이 다 이렇게 살아간다. 선인장을 필두로 사막의 꽃들도 특징이 있다. 꽃잎이 도톰하고 유난히 빛깔이 선명하다는 점이다. 파피도 여린 가지와 달리 주황빛이 매혹적이다. 가시가 많거나 줄기가 변형된 것은 그렇다 치고 이 유혹적인 꽃빛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척박한 토양, 쉴 그늘 한 점 없는 메마른 땅에서 피어나는 꽃들이다. 이들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응당 나비와 벌의 부침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샘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을까. 사람의 이치로 보자면 바람 좋고 그늘 좋은 곳에 사는 꽃보다 이 사막의 꽃들은 더욱 보암직하고 매력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결핍은 욕망의 배면이므로.
결핍이란 삶의 복선이다. 치명적 매혹은 치명적 결핍에서 오지 않던가. 중국 춘추시대 말기 월(越) 나라 서시의 매력은 그녀의 찡그린 얼굴로 더욱 회자되었다. 천 리 밖에서도 매력적이었던 그녀의 찡그린 표정과 자태는 치명적 복통에서 기인한 것이다. 결핍의 위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결핍은 병리적으로 이해한다면 괴로움이 되지만 그것을 끌어안으면 경쟁력이 된다. 토크 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오늘날 가장 친숙한 억만장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소설 ‘사막의 꽃’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말리아 여인 와리스 디리는 자신의 불행을 딛고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환경적 결핍을 안고 성장했다. 이들 외에도 장애와 가난, 불가항력적 환경을 극복한 사람은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고흐가 그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도 알고 보면 결핍이었다. 그에게는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었다.
만화계의 거장 찰스 먼로 슐츠는 우리에게 스누피로 더 잘 알려진 만화 ‘피너츠(Peanuts)’의 저자다. 그가 피너츠로 전설이 되기 전까지 세상은 그의 만화에 주목하지 않았었다. 이때 그가 남긴 말이 ‘유머는 행복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였다. 오래 움츠렸던 그는 결국 50년 연재라는 장거를 이뤄냈다. 유머와 결핍은 동류항이다. 그의 만화는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물이 찔끔 나는 따듯한 대사로 넘쳐난다. 그 유머러스한 대사는 일상의 결핍에서 건져 올린 보석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상은 늘 얼마간의 욕구불만 상태에 있지 않던가.
사막의 꽃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돌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꽃잎 하나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파피의 저 불타는 주황 빛깔은 죽을힘을 다한 그들의 혼신의 색이다. 결핍의 결정체다.
<한국산문 2019. 7월호>
엘에이에서 북쪽으로 2 시간 가량 운전하면 엔텔롭 벨리다. 4월이면 파피가 흐드러지게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