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어는 무기다

by 명진 이성숙

지식인의 조건, 영어



영어 못한다고 여행 못할 것은 없지만 영어를 할 줄 알면 여행은 쉬워진다.


과거 한국이 개발도상국일 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사회적으로 회자했다. 법절차는 까다롭고 일은 빨리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격다짐으로라도 일을 성사시키고야 말았던 한국인의 우직한 근성을 표현한 것쯤으로 이해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끼리의 얘기다. 세계 시민의 관점이라면 무질서의 극단이라고 밖에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다.


외국 생활을 좀 길게 하다 보니 가장 불편한 건 언어다. 언어장애는 장애등급 중에서도 중증에 속한다. 그 답답함은 주먹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관공서에 불만처리를 해야 할 경우나 식당에서 음식값이 잘못 계산되었을 때 등, 말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은 바로 이런 때다. 좋은 말은 표정으로도 전할 수 있고 바디랭귀지로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내 상황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거나 주장해야 할 때 말의 부재는 나의 입지를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는 지식인의 조건이 있다. 악기 하나를 다룰 줄 알 것, 논리적으로 글을 쓸 줄 알 것, 모국어 외에 외국어 하나쯤 자유롭게 할 것, 자신만의 요리 한 가지 할 줄 알 것 등이다. 출신 학교나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한국인들과는 많이 다른 기준이다.


여행하는 국가 현지어를 안다면 더욱 좋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영어만 잘해도 충분하다. 작은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 주문할 때만 해도 영어가 된다면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길가다 만난 모르는 사람과도 한 시간씩 대화를 나누기 일쑤다. 이때 영어를 못한다면 누가 내게 말을 걸어올까 두려워 구석으로 피하게 될 것이다. 직원은 메뉴판을 두 개 들고 와서 영어로 줄까, 00어(현지어)로 줄까 하고 묻는다. 어찌할 텐가? 음식이 나오기 전에 가벼운 이야기나 농담 등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서구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문화다. 직원들은 내게도 와서 말을 건다. 알아듣지 못하고 대답할 수도 없다면 여행의 재미는 반감될 게 뻔하다. (내 영어도 어중간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여행하는 내내 그 모자란 영어의 도움이 참으로 컸다)


세계는 지구촌으로 불린 지 오래고, 영어는 지구촌의 언어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영어 필요에 대한 인식은 많이 떨어져 보인다. 세계적으로 한인사회가 가장 크게 발달해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상황을 보자. 엘에이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간다. 한인 사회는 미국 중앙정부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리더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속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인들의 중간소득은 우리가 무시(?)하는 베트남인보다 못한 꼴찌다. 미국 평균보다 두 배 가량 높은 한인들 학력 수준을 감안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통계는 한인 빈곤율(15.1%)이 베트남인을 제치고 미국 내 1위 임도 보여 준다. 이는 미국 전체 빈곤율(13%)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 통계는 몇 년째 달라지지 않고 있다. 원인은 딱 하나다. 영어를 못 한다는 것. 한국의 주요 대학을 나왔어도 말을 못 하니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고 횡설수설하면서는 업주의 횡포에도 저항할 수가 없다. 언어는 생존의 제1 수단이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다.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면 잠시라도, 간단한 영어는 익히고 떠나는 게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