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용도 전기쿠커와 휴대용 정수기 유용
준비물에 밥솥과 쿠커, 브리타 정수기를 넣은 걸 보면서 놀랐거나 웃었을 독자가 있었을 테다.
나는 토종 밥순이다. 식탁에 김치만 있으면 진수성찬 같고, 김치가 없으면 먹을 게 없는 듯 느껴진다.
호텔에서도 입맛 찾아 먹어볼 요량으로 밥솥이니 쿠커니 챙겼던 것인데, 여행 기간 내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여행 생초보도 아닌데 밥솥까지 챙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갔다 싶지만 한국식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토록 강했었나 보다. (21세기 유럽 여행을 하면서 말이다. ㅎㅎㅎ)
여행 초반, 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때는 조리도구가 아니라 식재료가 필요했다. 호텔로 숙소를 잡기 시작하자 밥솥이니 쿠커 등은 짐만 될 뿐이었다. 결국, 벨기에 우체국에서 두 번째로 짐을 부치던 날 몽땅 한국으로 보내버렸다.
음식을 해 먹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종일 걷다가 들어와서 식사준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는데(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때조차도), 그러다 보니 계속되는 유럽 음식에 적응 못한 몸은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나는 지금도 알레르기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알레르기로 몸이 몹시 가려운 바람에 가능하면 한식집을 찾아다녔다. 그러자니 식비가 크게 들었는데, 스위스 넘어 동쪽으로 향해 갈수록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동유럽에는 아직 한국이 충분히 알려진 나라가 아닌 듯했다. 한식집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코리언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묻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행 말미, 리스본으로 돌아와 근교 나자레에 갔을 때, 해풍에 말린 생선을 사 와 소금구이를 했다. (리스본의 숙소는 아파트형 호텔, 취사 가능한 주방이 있었다.) 오랜만에 어찌나 밥을 많이 먹었던지 당시의 포만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준비물을 잘못 챙긴 셈이다. 뒤늦은 얘기지만, 너무 비싸지 않은 호텔에 묵기로 하고 라면 끓일 정도의 전기 쿠커와 수저, 햇반과 휴대용 정수기 정도만 있으면 식사를 위한 준비로는 충분했었다. 브리타 정수기를 가져간 것만은 잘한 일이었다. 유럽은 식당에 공짜 물이 없고 음료수 값보다 비싸게 받는 곳도 있다. 나는 들고 간 정수기로 물을 받아 사용했으므로 물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나자레에서 사 온 생선과 동네 마트에서 산 스테이크, 그리고 콩껍질로 차린 한 끼 식사. 유럽 여행 중 최고의 식단이다.
나자레 레스토랑에서의 점심. 작은 마을에 먹을 게 넘치는 곳이었다. 해변가 아이스크림도 진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