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록하라

by 명진 이성숙

기록된 것만 유효하다



여행 준비물로 소홀하기 쉬운 품목이 펜과 노트다. 편하게 쉬었다 오리라 마음 먹었다면 모르겠으나, (내 경우, 그렇다고 해도) 기록을 남기는 노력은 시간을 의미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펜과 노트 등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기록은 중요하다. 노트를 마련하여 메모하거나 사용하는 SNS가 있다면 활용하도록 하자. 나는 노트와 페이스북, 휴대폰을 이용했다. 페이스북은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간단한 메모를 곁들일 수 있고, 노트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내 방식으로 적었다. 사진 장소를 기록하는 데는 휴대폰이 매우 유용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은 사진을 찍은 후 사진 아래에 약간의 메모가 가능하도록 여백이 있다. 나의 여행기는 이 여백에 남긴 기록들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은 곧 기억이라 단정해도 좋을 만큼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시간에 묻힌다.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거나 나태해져서 기록하지 않은 날들의 여행기는 매우 단순하고 짧게 끝나 있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눈치챘으리라. 오직 글을 위해서라면 인터넷에 올라온 많은 정보들을 스캔하여 정리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도 않은 것들을 짜깁기 해낸 글이라는 게. 내가 할 수 있었던 만큼의 기록, 즉 솔직한 여행기를 쓰고 싶은 나는 현장에서 얻은 것들에 충실하고 싶었다. 나의 독자에게는 크게 미안하지만 그런 연유로 많은 글이 빈약하다. 그러나, 그중 몇 꼭지는 꽤 열심히 쓰기도 했다. 사실 여행하면서 기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록할 것! 나는 걸으면서,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잠들기 전이나 카페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할 때조차 그 순간을 기록하려 애썼다. 내용이 충분치 않다고 해도, 그 결과 나는 지금 조촐한 여행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한 곳을 더 보려는 노력보다 멈춰서 기록하는 수고가 보다 중요하고, 여행을 끝낸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우리가 알듯이, 기록되지 않은 장소는 시간이 지나면 다 거기가 거기 같다. 가령 노을에 감동하여 사진을 남겼는데, 어느 순간 여기가 페루 앞바다인지, 아마존 노을인지, 심지어 정동진 노을인지조차 불분명한 때가 오는 것이다. 그리되면 그곳에 '가지 않고도 아는, ' 집에서 인터넷 검색한 사람의 앎보다 나을 게 없다.


아무리 크게 감동받은 순간도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왜곡되거나 종국에 사라진다. 천재의 기억보다 평범한 사람의 기록이 설득력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기록을 위해 유려한 문장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 기억을 위해서 날짜, 장소, 순간을 설명할 한 줄 문장,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시 한 번, 기록은 행위에 대한 객관적 중립적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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