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었다는 말을 체력이 떨어졌다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은 물 건너갔다고 본다.
여행은 일단 많이 걷는다. 이동수단이 있다 해도 결국 걸어야 하고 여행 기간 동안 집중되는 걷기는 체력을 소진시킨다.
체력은 모든 일의 원동력
살아보니 체력이야말로 모든 일의 원동력이다.
나는 20여 년 전 암 수술 후 2년가량을 병석에 있었다. 그때의 절망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수술 후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의 감격을 기억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던, 사지에 이렇듯 기운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래도 살고 싶어 했을까. 수술보다도 수술 후 몇 년간의 회복기간은 그만큼 나를 힘들게 했다.
몸을 일으켜 내 손으로 밥숟가락 들기도 어려웠던 때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 어린 딸 학교 학부모 회의에도 나갈 수 없던 체력이었다. 그 시기 나는 꿈꾸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가장 먼저 포기한 건 바로 여행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몸이 회복되었을 즈음, 가장 먼저 실행한 일도 여행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자신감이 덩달아 떨어진다. 밀려오는 원망과 앞으로 어떻게 살까 싶은 절망으로 퇴원 후의 삶은 망가졌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아서, 눈부신 여러 날을 눈물로 보낸 후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내게 허용된 것들에 감사하기로.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문밖에 나와 걸었고 집 근처 산에도 다녔다. 침대에서 일어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감도 회복되었다. 우울한 얘기를 잠깐 했지만 체력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사흘은 내리 비가 내렸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유럽의 겨울을 쏘다니던 나는 급기야 한 달 만에 감기를 안았다. 독일의 그 많은 볼거리를 제치고 나는 호텔 방에 몸져누웠다. 그런 채로 스위스행 기차에 올라 체르마트까지 가서 이글루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낭만은 커녕 콧물 닦느라 잠도 한숨 못 잤다. 극기훈련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앞선 글에서, 여행 전 준비로 영어공부를 권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체력이 우선이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가까운 곳, 쉬운 코스를 여행하면서 체력 보강에 나설 수도 있겠다. 여행은 마음의 근육을 다지게 하므로, 다리 힘도 늘지 않겠나. 그런 후 차츰 좀 더 도전적인 방향으로 여행의 영역을 넓혀 나가자. 나의 수술 후 회복 첫 여행지는 홍콩이었다. 인천- 홍콩 간 비행은 장거리 비행이라 할 수 없지만, 당시 나는 허리가 아파 기내 좌석에 제대로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홍콩 여행의 기억은 지금도 악몽으로 남아 있다. 홍콩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내 몸이 '금 간 꽃병'이었던 까닭이다.
이 글을 읽는 이 모두의 건강을 기원한다.